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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 1호 목사 이도종은 1892년 9월 13일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금성리 706번지에서 아버지 이덕련, 어머니 박열선의 5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1908년 선교사 이기풍 목사의 전도로 할머니 안정순등 가족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소년 시절 고향 금성에서 한학을 했고, 1910년 평양숭실중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1919년 조봉호 전도사 등 도내 교인 60여명이 체포된 상해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다가 투옥된 바 있다. 1921년 전도인으로 협재교회를 개척하여 시무한바 있으며, 이후 1922년 조선예수장로회신학교(평양)에 입학하였고, 재학중에는 삼양교회 전도사로 시무하기도 했으며, 1926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전라북도 성말, 신풍 등의 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기도 했으며, 1927년 6월 26일 전라노회(김제중앙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써 제주인 1호 목사가 되었다. 그 무렵 결혼 주례사 중 시국관련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그 지방에서 더 이상 목회할 수가 없게되자 1929년 제주로 귀향하여 본격적인 제주목회를 하게되었다. 그래서 성읍, 신풍, 서귀포, 볍환, 중문, 표선, 남원 등 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으며, 1937년 남원교회 시무당시 제6대 제주노회장에 선출되었다. 이떄 후세 교육의 절실함을 깨닫고 만주까지 가서 기금을 모금하여 제주시 3도 2동 905번지(현 YMCA)에 제주성경학원을 세워 개원하였다.(이 학원은 30여면 운동되다 폐원되었음). 1937년 고산교회에 4대 목사로 부임하여 해방직후까지 시무했는데, 1948년 4.3직후인 6월 16일 고산에서 당시 순회목회(조수, 인성, 화순)를 하던 인성교회(현 대정교회)와 화순교회(현 안덕교회)를 향해 산길로 오던 중 대정읍 무릉2리 인향동에서 무장단체(폭도)에게 붙잡혀 순교하시니 55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부인 김도전여사와의 사이에 창구, 영복, 원복, 태복 등 4남과 딸 복순을 두었으며, 장손인 이동해 장로와 믿음의 자손들이 그의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주후 2007년 6월 16일. 대한예수장로회 제주노회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