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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사령관 신상묵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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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묵(辛相默)은 대구사범학교 5기생 출신으로 박정희의 1기 후배이며, 그 역시 박정희·백선엽처럼 교사 근무 중 조선특별지원병으로 일본군에 지자원입대했다. 일본군 헌병으로 진해에 있던 일본 해군 군용기 공장에 근무하면서 오장을 거쳐 하사관 중 가장 높은 계급인 군조에 올랐다. 이때 항일 운동을 탄압하고 항일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를 직접 고문한 혐의가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신상묵은 창씨개명한 일본 이름을 사용했으며 조직의 배후를 대라며 수십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뒤 1946년 국립경찰 양성 1기로 미군정 하의 경찰에 투신하였다. 곧 경상북도 도경 보안과장에 올랐으며 한국 전쟁 후에는 서남지구전투사령관으로 조선인민유격대와의 전투를 이끌었다. 이후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제주도 경찰국장을 역임했다. 아들인 신기남이 정치인이 되면서 신상묵의 이력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경찰을 지냈다는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4년에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둘러싸고 진상 규명에 적극적인 입장의 열린우리당과 소극적인 입장의 한나라당이 대치하던 중, 한나라당과 보수주의 언론에 의해 열린우리당 의장인 신기남의 아버지 신상묵이 일제 강점기에 헌병으로 근무할 때의 이력이 상세히 드러났다. 처음 폭로가 나왔을 때 신기남은 신상묵이 일제 강점기에 교사로만 재직했다고 밝혔고, 이로 인해 거짓 해명 논란이 인 끝에 신기남은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했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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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전사령부는 한국 전쟁중에 창설될 군단급 조선인민유격대을 토벌하기 위한 쥐잡기 작전에 의해 창설된 군,경 합동 사령부이다. 1951년 12월부터 1952년 3월까지 활동하였다. 백야전사령부(사령관 : 백선엽 육군중장)를 구성한 부대는 다음과 같다. 수도사단 (사단장 송요찬 준장) 1 기갑 연대 (이룡 대령) 1 보병 연대 (박춘식 대령) 26 보병 연대 (이등화 대령) 8사단 (사단장 최영희 준장) 10 보병 연대 (정강 대령) 16 보병 연대 (이재일 대령) 21 보병 연대 (전부일 대령) 서남지구 전투 사령부 (사령관 김용배 준장) 107, 110, 117예비연대 1, 2, 9 경비대대 남원 치안국 전방 사령부 (사령관 최치환 경무관) 태백산 지구 전투 경찰 사령부 (사령관 이성우 경무관) 200경찰연대 207경찰연대 지리산 지구 전투 경찰 사령부 (사령관 신상묵 경무관) 203경찰연대 205경찰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