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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양민 희생자위령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그후 삼개월동안 일시 남한을 점령하였던 북한인민군들은 대한민국 구군의 반격으로 괴멸되기사작하였다. 같은 해 11월 17일 새벽 이곳 남원시 대강면 강석마을에서는 심야의 적막을 깨고 요란한 총성이 울리더니 참담한 살육이 벌어졌다. 당시 퇴로가 막힌 인민군 일부는 깊은 산속으로 도피하더니 밤이 되면 하산하여 인근 마을로 잠입 주민들을 겁박하고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 위협적인 빨치산 잔당들을 토벌하기위해 국군 제11사단 소속의 병력이 투입되었고 11월 16일 밤부터 11월 17일 새벽까지 그럭재에서는 국군과 빨치산의 격렬한 교전이 있었다. 격전이 종료된후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은 강석마을로 내려와 집집마다 수색을 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주민을 마을앞 488의 1번지 논으로 집결시켜 용공분자들을 색출하기시작하였다. 그러나 마을에 침투했던 공비들은 이미 전투중 사망했거나 도주한 상태였다. 한국전쟁사료에 의하면 그 날 국군의 전과는 적사살 4명, 포로 1명이었다. 이미 미미한 전과에 허탈감과 실망을 느끼는지 군인들은 공비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누명을 주민전체에게 씌워 반인륜적이고 비이성적인 학살을 감행하였다. 우선 임의로 남자 10명을 선별하여 눈을 가린채 마을회관앞집 마당을 끌고가 일본도를 휘둘러 무지바하게 살상하고 뒤이어 여자 6명을 마을 뒷산 362의 16번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