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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과 해군첩보부대의 역할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 원수는 1950년8월12일 북한 공산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인천상륙작전(일명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계획을 확정한 후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에게 정보수집 임무를 부여하였다. 손원일 총장은 정보국장인 함명순 소령에게 일명 엑스레이작전(Operation X-Ray)을 집행할것을 명령하였다. 작전의 주 임무는 인천, 서울, 수원등지에 배치된 적의 현황과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첩보수집이었다. 이를 위해 함명수 소령외 16명은 8월24일 새벽1시30분에 목적지인 영흥도 북쪽 십리포 해안에 침투하였다. 첩보부대 일부 요원들은 인천 시내에 잠입하여 전쟁 전 해국정보국지원요원으로 활동하던 민간인 2명과 접선하여 서울과 수원등지를 왕래하면서 주민 동향은 물론 적의 병력과 무장, 방저진지, 해안과 도로상태등 중요한 군사기밀을 탐지하였다. 이렇게 수집된 첩보는 9월1일 영흥도에 상륙한 미국 극동군사령부 정보국소속의 클라크 해군 대위를 통해 맥어더 사령관에게 보고되었다. 9월14일 인천상륙작전 D-Day가 임박하자 극동군사령부는 첩보부대에게 철수명령을 내렸다. 철수를 서두르고 있을때 인근 대부도에 있던 적1개 대대가 영흥도 진두리에 기습공격을 해왔다. 이에 대항하여 당시 영흥도에 남아있던 임병래소위와 첩보요원 6명, 그리고 청년의용대원 30명은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첩보요원들이 포위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하사가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보트를 이용하여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포위된 두 사람은 끝까지 싸우다 생포될 경우 상륙작전 계획 비밀이 누설될것을 우려하여 소지하고 있던 총으로 자결하였다. 인천상륙작전 D-Day 하루 전이었다. 이에 미국정보는 해군첩보부대의 완벽한 정보수집이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해군첩보부대 부대장 함명수 소령과 임병래 소위, 홍시욱 하사에게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우리정부는 함명수 소령에게 금성을지무공훈장을,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하사는 각각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그리고 임병래 중위는 1999년 8월, 홍시욱 하사는 2005년 6월 "호국의 인물"로 선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