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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지구 전사문 여기 관동의 영산, 풍광 그윽한 곳에서 혈전이 있었던 것은 1951년 5월이다. 그해 2월에 삼척 부근에서 태백의 준령을 따라 북진한 국군 수도사단(맹호부대)이 4월에 관모봉 한계령선에 이르러 백담사와 대승폭포 부근에 도사린 북괴 제6, 제12사단과 대결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맹호들이 청봉을 단숨에 뛰어넘고 노호를 터뜨리며 적구를 향해 공격해 갔으니, 그날이 5뭘 7일. 적의 저항도 완강하였지만 더우기 높은 봉, 깊은 골이 첩첩하여 식량과 탄약이 미처 뒤따르지 못하매 악전 고투가 계속되었다. 이에 공군 수송기의 공중 보급을 받아 가며 난관을 극복하고, 공격 개시 5일만인 12일에 목표를 점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인제에서 하진부리로 침습한 중공군이 대관령을 위협하므로, 수도 사단은 그곳으로 달려가 그 적을 막아낸 다음, 반격을 재개하여 5월말에 일사천리로 이곳을 다시 지나 6월 초에 향로봉을 점령하고, 이어 건봉산을 장악함으로써 오늘의 휴전선인 남강 기슭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 때, 이 산천에 선혈을 뿌린 맹호의 이름은 일일이 밝혀 적지 못하거니와,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한몸 바친 젊은이의 넋이 여기 서려 있으니, 이제 청봉 높은 봉우리에 오르는 사람들은 먼저 이 돌 앞에 고개 숙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