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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약사 전통과 무훈에 빛나는 우리 제8보병사단은 강릉의 제10연대, 삼척의 제21연대를 모체로 한국전쟁 발발 1년전인 1949년6월20일 강원도 강릉에서 이형근준장을 초대 사단장으로 하여 찰성되었습니다. 사단은 1949년 6월부터 50년 6월까지 38선 경계임무를 수행하면서 태백산지구 공비토벌작전등에 참가하였으며, 6.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강릉축선에서 북괴군 제766및 제549유격연대를 상대로 열세한 병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일간 적 진출을 저지함으로서, 북괴군의 속전속결을 시도하는 전략적 기도를 와해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 보루인 영천지구천투에서는 북괴군 제15사단및 제73,103 독립연대와 10여일간의 격전끝에 적을 괴멸시키는 대전과를 세움으로서 낙동강 방어선으로부터 대반격작전의 전환점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실로, 영천지구전투는 한국군이 최초로 시행한 단독작전으로서,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 방어선으로부터 실시된 총반격작전의 발판을 제공한 한국전쟁 중 3대 대첩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영천지구전투가 끝난후, 워커 미8군사령관은 "한국에 와서 이런 전투도 처음이거니와 이렇게 많은 노획물자도 처음봤다"면서 사단의 전공을 치하했고, 북괴수령 김일성조차도 1950년 12월 4일 만포진에서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 3차대회에서 영천전투를 한국전쟁의 전환점으로 보고 "영천을 점령해을때 승리를 확신했으나 이를 상실했을때 패배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극명하게 평가했습니다. 이후 사단은 50년 10월 8일, 38선을 돌파하여 평안북도 희천까지 북진한 것을 비롯, 백석산지구 전투, 지형능선및 수도고지 탈환작전에 참가하는등 50여차례의 전투에서 백절불굴의 위용을 떨치고 강원도 금성에서 휴전을 맞이하였습니다. 휴전이후에는 연천지역에서 전방 경계 임무를 수행하다가 64년 8월 30일 현위치로 이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간중 사단은 13회에 걸친 팀스피리트 연습 참가와 '98년에 건군이후 최대 규모의 통합화력 운용시범을 실시하였으며, 특히 한국국 독자적으로 실시하는 호국훈련에 3회 참가하여, 사단급 기동훈련의 새 모델을 제시함으로서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부대 기동훈련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