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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대대장 장강석 소령(육사 5기)은 서울로 출장을 떠나 있었고, 포대장 3명 역시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로 출발한 상황이라서 대대 부관 이남구 대위가 3중대는 대대본부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전포대장들이 지휘하는 2개 중대를 이끌고 출동을 했다. ........................... 1950년 6월 27일 사천 초등학교 일대에서 전개된 18포병대대의 혈전은 이곳 주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 뒤 피난갔던 주민들이 돌아오자 그들은 전투장에 흩어진 유해를 한데 모아 안장하였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러간 1970년 3월 1일 사천 초등학교로 부임한 김유진 교장이 이 사실을 알고 면 유지 염재근씨(명주군 사천면 미노리)를 비롯한 관내 기관장들의 협조 아래 무명용사 3위의 묘를 복원하고 호국 영현으로 모시고 추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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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 href=http://koreanwar60.tistory.com/399 target=_blank>동해안 18포병대대의 진내[陣內] 혈전</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