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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교 전적지 모진교는 화천~춘천을 잇는 5번도로의 북한강상 교량으로 38도선 남쪽 300m지점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춘천댐 건설로 수몰되어 그 훈적을 찾을 수가 없고, 북한강 동쪽 도로 또한 수몰되었다. 모진교는 춘천지구 초기 전투의 상징적인 장소로 6.25발발당시 6사단 7연대 3대대 9중대가 방어하고 있었다. 적은 1950년 6월 25일 04:00시 공격준비 사격을 개시하였고, 이때 286고지에 위치한 9중대 관측소에 적포탄이 명중하여 중대장을 포함한 1개분대가 폭사하였으며 중대지휘통신체계가 일시 마비되었다. 고탄리 중대본부에 있던 부중대장이 급거 중대 관측소에 도착 잔여병력을 수습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포병사격 연신후 제파식으로 공격해 오는 적부대를 근거리까지 유인한 후 기습사격을 실시래 제1제파를 격멸하였으나 탄약이 떨어져 어쩔수 없이 양통고개방향으로 철수하였다. 이 무렵 우전방 372고지를 방어하던 1소대도 적 1개중대와 교전했는데 소대장이 전사하고 병력 절반이 손실되자 수리봉쪽으로 철수하였다. 적은 우측의 아군 진지를 돌파해 측방 위협을 제거한 후 모진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05:00시경 SU-76자주포 10대를 앞세운 적이 모진교 북방에 출현하여 모진교 남쪽에 구축한 아군진지에 맹포격을 가한후 05:30분경부터 모진교를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이 때 아군진지는 적 포격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교량 동쪽끝에 배치된 2.36인치 포켓포가 적자주포에 대하여 사격을 실시 수발을 명중시켰다. 그러나 적자주포는 파괴되지 않고 계속 전진해 오자 아군소대는 붕괴되어 철수하였다. 또한 급거 출동한 연대 57미리 대전차포 1문이 서원고개에서 남진하는 적자주포에 사격을 가해 명중을 시켰지만 파괴되지 않자 역골방향으로 철수하였다. 안타깝게도 아군은 모진교 폭파 계획을 수립하지 않아 고량파괴에 실패함으로서 남침당일 09:00시경에는 적이 춘천을 바라 보이는 역골까지 무인지경으로 남진하게 하는 뼈아픈 전훈을 남겼다. 당시 빈약한 무기로 적에 대항하여 용감히 싸웠던 국군장병들의 투혼을 기리고 다시는 뼈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하는 의미에서 이곳에 전적지 표지석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