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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의 인생 후반부 / Life of Sim Hun (Later Phase) ◆ 1928~1931 : 영화저널가 그리고 희망의 빛 - ◆ 1932~1936 : 당진, 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영화저널가 그리고 희망의 빛〉 1927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일활촬영소에서 영화를 공부하다가 6개월 만에 귀국하여, 일제의 검열이라는 제한적인 글쓰기가 형성되어가는 암울한 분위기에서도 심훈은 1928년 기자로 입사하여 여러 편의 영화논평을 작성한다. 1930년에는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하고, 안정옥과 재혼하여, 1931년 장편소설 〈불사조〉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 1932년 첫 아들 재건이 출생할 무렵 희망의 빛을 느끼셨던 듯하다. 〈당진, 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932년 일제의 탄압으로 부모님이 살고 있던 당진으로 이사하여 창작활동에 전념하였으며, 봄의 서곡 〈영원의 미소〉 (1933)을 발표하고, 〈직녀성〉(1934)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집을 지어 필경사(筆耕舍)라 불렀으며, 농촌 생활의 어려움을 통해서 희망을 찾는 노력을 하였다. 심훈 선생은 1936년 8월 16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의 우승에 감격하여,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로 마지막 글을 남겼다. 이후 상록수 출판 관계로 상경했다가, 당시 전국적으로 퍼진 장티푸스에 걸려 9월 16일 36세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