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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화동전적지 이곳은 6.25전쟁초기 6사단 7연대본부 근무소대와 19연대 1대대 장병들이 북한강 샛강 여울인 가래목과 소양강을 도섭해 춘천시 서쪽에서 공격해오는 적을 격멸한 장소이다. 당시는 의암댐이 건설되기 전이라 중도섬 일대의 지형이 현재와 크게 달랐다. 붕어섬, 아래중도섬, 윗중도섬, 고구마섬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동쪽으로 북한강의 작은 샛강이 흘렀다. 또 근화동, 소양동 제방 뚝 아래 강변일대는 넓은 모래밭이 펼처져 있었으며, 소양강 수심도 얕아서 몇몇곳에서도 도섭을 할 수가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적이 기습남침을 해오자 춘천을 방어하는 6사단 7연대는 대부분의 병력을 소양각 북쪽 전선에 투입했기 때문에 소양강 남단을 방어할 병력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7연대본부 근무중대의 1개소댈글 차출하여 춘천역 부근에서 소양굑 밑까지 제방 뚝을 따라 배치하였다. 6월 25일 11:00시경, 옥산포일대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될때 적 읽부가 가래목여울(북한강의 샛강)을 건너 근화동으로 침투를 시도하였다. 이 때 막 배치가 완료된 7연대 근무속대가 적을 발견하고 치열한 사격을 가해 대부분을 격멸했지만 5~6명이 춘천시내로 침투하였다. 그러나 춘천시민과 경찰의 협조로 모두 사살되었다. 6월 26읽 아침 6삭단 예비인 19연대 1대대가 증원되어 근화동일대에 배치됨으로서 취약한 방어선이 보강되었다. 이 날 적은 14:00시경 옥산포및 마전이 일대에 전개한 후 소양교방향으로 공격해 왔으나 16포병대대의 집중포격을 받고 격퇴되었다. 이에 적은 공격방향을 근화동 일대로 전환하고 가래목 여울을 건너오기 시작했다. 적은 19연대 1대대가 증원된것을 모르고 이 접근로를 선택한것같았다. 약1개 대대의 적이 가래목(현 수몰지역)일대에서 전개해 근화동방향으로 접근해 왔다. 이를 목격한 19연대 1대대가 기관총, 박격포, 대전차포등 각종 공용화기를 총 동원해 맹렬히 사격을 하고 16포병대대가 집중포격을 퍼붓가 엄폐물이라고는 모래언덕밖에 없는 가래목 일대는 살육장으로 변했다. 특히 포병이 순발신관과 시한신관을 혼합해서 사격하자 당위에서 터지는 포탄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파편때문에 적은 무더기로 쓰러져 죽었고 15:00시경이되자 살아 움직이는 적은 거의 없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도망가는 몇명만 보일뿐이었다. 적 수백명을 격멸한 통쾌한 승리였다. 그후 19연대 1대대는 홍천방면의 전황이 위급하여 18:00시경 홍천으로 이동하였고, 7연대본부 일부 병력이 방어진지를 인수하였다. 그리고 6월 27일 12:00시경 적 전차가 소양교를 건너 춘천시내로 진입하자 근화동 일대에 배치되었던 병력들은 어쩔 수 없이 남춘천을 거쳐 원창고개로 철수하였다. 소양동과 근화동 일대의 제방 뚝에 배치 되었던 국군장병들, 그들은 해일처럼 밀려오는 적들을 막아낸 방파제나 다름 없었다. 만약 적들이 남침 초기 가래목여울을 건너 춘천시내에 돌입했다면 춘천전투에서 승리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의 피로 물들었던 강변, 그 모든것ㄱ을 덮어 버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여 이름 모르는 영웅들을 기리자. 그리고 그들의 뜻을 이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