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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69 vol. 37 게 드러내준다. 삶이 고통스럽고 남루할수록 예술작업은 일상의 전투방식이라는 위로와 대 안을 여러분도 느껴보시기 바란다. 일상 훔쳐보기의 대가 홍상수의 <하하하>, <옥희의 영화> 지식인 남자의 위선적인 태도, 특히 그의 욕정과 휘말려드는 여자들의 이야기. 그런 홍상 수의 일상영화는 갈수록 섬세하고 깊이 들여다보는 일상 해부술이 농익으면서 여자들도 주 체적으로 그려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올해 두 편이나 개봉된 그의 영화들은 전작들보다 이야 기 형식과 심리묘사를 절묘하게 봉합해낸다. <하하하>는 두 남자가 여름 통영에서 겪은 이야기를 오가는 막걸리잔에 담아 나누는 형 식에 담겨진다. 이들은 각자 통영에서 여자와 욕망의 관계를 엮지만 이들은 놀랍게도 모 두 연결되어 있다. <옥희의 영화>는 네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영화과 교수, 독립영화감독이자 강사, 영화학 도 두 사람의 입장과 관계를 펼쳐낸다. 막판에 나오는 옥희의 이야기는 두 남자-교수와 남학 생-와 같은 산을 산책한 이야기로 인간관계의 허망함과 묘한 인연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 다. 이 에피소드를 마주한 우리는 속물스런 세상에서 남녀가 연애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 게 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른다. <허트 로커>, 불안과의 전투 바그다드의 거리에서 일상의 전투를 수행하는 이들의 심리를 그려낸 이 영화는 일반적인 전쟁영화와 달리 대규모 전투신이 없는 대신 병사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간다. 폭발물을 찾아내 제거하는 EOD 병사들의 활약은 동네 순찰 정도로 미약해 보인다. 설령 폭탄이 터진다 해도 거대한 건물이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사막에서 총격전을 벌여도 하나씩 죽어나가는 모습으로 보여지는 대상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이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체를 제거하는 과정은 심리적 공포와 불안으로 긴장감을 폭발시킨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이야기를 통해 병사의 마음 속으로 파고드는 이 영화는 누가 테러 리스트인지 일반인인지 모른채 모두를 의심하며 거리 구석을 뒤지고 다니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미국이 이라크에서 수행하는 전쟁의 실체를 고발하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노라면 파스빈더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제목이 떠오르기도 한다. <클래스>, 다문화 교실의 현장 일기 파리 외곽,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중학교 교실을 무대로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벌어지는 선생과 학생의 대결이 실황중계처럼 펼쳐진다. 토론수업 위주의 이 교실은 처음부터 학생과 교사의 대결이 팽팽하게 맞선다. 학기 초 수업,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라고 하자,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의 전 부인인 캐서린 비글로우가 저예산으로 만든 이 영화가 <아바타>를 누르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자 화제를 모으기도 한 작품이다. Tip 선생 이름부터 소개하라고 학생들이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심지어 한 학생은 짖궂게 선생 의 성정체성까지 시험하려 든다. 이런 교실에서 교권은 없다. 시민혁명으로 공화정을 성취하고 자유, 평등, 박애를 내건 프 랑스 학교에서 교권보다는 평등한 인권이 문제가 된다. 당연히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체벌 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때론 말싸움으로 치닫을지라도 마랭선생은 끝까지 학생들에게 질문 을 하면서 상스러운 표현도 바른 프랑스어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단한 인내심을 갖춘 산 파술 교육법이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선생을 존경하기보다는 그와 대등하게 자신들을 대우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허물며 사회문제를 섬뜩할 정도로 치밀하게 그려내는 로랑 캉테 감 독은 노동자 감원 사태를 다룬 <인력자원부>에 이어 <클래스>로 지난 해 칸느영화제 그랑 프리수상을 하면서 현실영화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십대의 활력을 느끼며 평등과 토론문화 의 진수를 배울 수 있는 <클래스>를 보시기 바란다 <엘 시스테마-기적의 오케스트라>, 음악은 현실과 투쟁하는 것 빈민촌 아이들을 오케스트라 주자로 키워내며 나라 자체를 문화공동체로 변신시킨 기적 의 현장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다큐멘터리. 남미 북부 작은 나라인 베네수엘라, 빈민촌에서 70년대 중반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마약거래와 총기사고가 일상화된 이 곳, 누추한 차고에서 시작된 음악 교실은 이제 200여 개로 증가했고, 그 결과 40여만 명의 가난 한 아이들에게 음악하는 삶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아브라우박사는 “죽으면 쉴텐데”라며 휴일 없이 일하며 꿈을 실현하는 방식을 알아낸 몽상가 현자이다. 가난한 이웃을 가족으로 삼았던 인류의 스승들 얼굴이 공유하는 인자함과 사랑, 그런 공 익활동이 개인적으로도 즐거운 삶이란 걸 깨우쳐 주는 그의 미소가 마음을 뒤흔든다. 시내 공연에 나가는 아이들은 아브라우 할아버지와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산책할 생각에 즐 겁고 들뜬 마음을 전한다. 최근에는 음악센터까지 올 형편조차 불가능한 쓰레기하치장 아이 들을 위해 쓰레기더미 속에 음악센터를 세웠다.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합창단 육성에도 집 중하고 있다. 늘어나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마련해 줄 비용이 없어서 종이악기로 음악교육을 시작하는 ‘종이 오케스트라’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음악은 악기로 하는 것이 아 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