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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7 Peoples 밥퍼나눔운동의 시작은 지난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난히 추웠던 그 해 11월. 최일 도 전도사는 청량리 역전에서 사흘간 밥을 굶고 쓰러져 있는 노인을 만났다. 추위와 배고픔 에 쓰러져 있는 그 노인에게 라면 한 그릇을 끓여 대접한 게 나눔운동의 시작이었다. 밥퍼나 눔운동은 냄비 하나로 지극히 작은 것을 무의탁 노인, 행려자, 노숙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 웃들과 나눔으로써 시작되었다. 청량리 야채시장 쓰레기더미에서 처음으로 밥상이 차려진 이후 이름 모를 선한 사람들과 동네 주민들과 함께 라면공동체를 운영한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 부활절.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웃 일곱 교회의 후원을 시작으로 수십 개의 교회와 단체들의 협력이 이어졌다. 하루하루 후원이 늘어갔고, 그만큼 그들을 찾 아오는 소외된 이웃도 늘어만 갔다. 하루에 500명이 넘는 도시 빈민들이 청량리 굴다리 밑에 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삶의 희망을 이어나가게 된다. 1994년 청량리에 조그마한 오병이어(五餠二魚) 식당을 열었지만 줄을 잇는 식구들을 감당 하기엔 너무나 협소했다. 여전히 쌍굴다리에서 배식이 계속 되었던 시절. 그들은 여전히 비 바람을 맞고 추위에 떨며 길바닥에 앉아 굶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후원 은 점점 늘어만 갔고, 드디어 2002년 오랜 숙원이었던 다일밥퍼운동본부를 열기에 이른다. 제6대 밥퍼목사인 김형길 본부장에게도 감회가 남다른 순간이었다. “청량리 쌍굴다리 밑에서 밥퍼를 할 때는 비오는 날이면 비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했죠. 노숙인들도 국민이고 이 국민들을 국가가 돌봐 야 되는데, 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다들 하고 있었 죠. 그리고 2002년 서울시의 도움으로 드디어 지금의 건물을 짓게 됩 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좀 더 깨끗하고 넓은 새 건물로 이사할 예정이 고요” 중학생들이 고사리 손으로 식판을 씻고 있는 곳을 지나자 십여 명의 자원봉사자 들이 각자 맡은 반찬을 식판에 담고 있었다. 김치를 담는 것으로 시작된 식판은 마 지막 뜨끈뜨끈한 밥과 국을 담음으로써 푸짐한 한 끼 식사로 완성된다. 약 두 시간 남짓 되는 배식 시간 동안 끼니를 해결하고 가는 사람들은 무려 천 명. 자원봉사자 들은 힘들법도 한데 찡그린 이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이자 생명과 연결된 ‘밥’. 배고픈 자의 굶주림을 채워주는 일이라는 자긍심이 그 들의 얼굴에서 피로를 사라지게 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55 이 세상에 밥 굶는 이 하나 없을 때까지 밥퍼나눔운동본부 탐방기 이 세상에 밥 굶는 이 하나 없을 때까지 밥퍼나눔운동본부 탐방기 1 끊임없이 찾아오는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들이 보 내주는 쌀. 그것은 기적이다. 2 6대 밥퍼목사 김형길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오 늘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3 중학생들도 설겆이를 하며 봉사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릴레이탐방 '사랑과 봉사' 글 편집팀 사진 편집팀 2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