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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 예술가 정신이 제대로 담긴 사람을 키워보려 했어. 칼을 다루는 기술만이 아니라 전인적인 예술가를 키워보려고 했지.” 스스로가 혹독하게 일을 배웠고,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에 인생을 건 그이다. 하지만 칼을 잡기를 원했던 학생들은 붓글씨, 어탁, 꽃꽂이까지 하려 했던 그의 교육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편, 수강생 들의 입장에선 강사진이 부실하고 커리큘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 다는 반발도 있었다. 뜻과 의욕은 좋았으나 식당과 학원을 동시에 경 영하다 보니 생긴 문제에 대해서는 그 역시 아쉬워하고 있었다. 당시 학원으로 쓰이던 2층은 주인 없는 조리기구들로 가득해 휑한 느 낌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다시 최고의 요리학교를 세우겠다는 꿈 을 버리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토록 요리에 미치게 하는가. “혼이지. 요리라는 것은 사람의 혼이야. 음식은 곧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에 혼을 다 불어넣어야 되거든. 그것이 안 들어가면 요리가 될 수 가 없지. 요리는 소금, 물, 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거야. 나머지는 손과 기술로 혼을 불어넣으며 도와주는 것뿐이지.” 그런 그는 요즘 서점가의 가벼운 요리책이나 우후죽순처럼 문을 여 닫는 식당에 대해 근심을 보낸다. “어릴 때 누가 회초리를 들면 무서워서 오줌을 찔끔하는 경험이 있을 거야. 생선도 마찬가지야. 생선을 바닥에 확 패대기치면 근육이 수축 되면서 본능적으로 정자를 배출한다고. 그럼 맛이 없어. 다들 막 잡 은 싱싱한 생선만 쫄깃쫄깃 하다고 좋아하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사후 경직됐던 근육이 이완되면서 더 부드러워지고 맛도 더욱 풍부 해지는 거야. 그 때가 가장 맛이 있는 거지.” 그의 가게에서는 생선을 잡자마자 회를 치지 않는다. 생선의 살이 가 장 맛있을 때까지 숙성을 시켜 내놓는 그의 음식. 이는 한국인의 입 맛에 익숙하게 변형된 일식(日食)이 아닌 일본정통요리를 뜻하는 화 식(和食)이라고 한다. 그 길에 자신의 모든 걸 건 사나이. 그 인생사 의 전환점은 다름 아닌 해병대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의 큰 아 들은 이미 해병대에서 복무 중이며, 작은 아들도 입대를 대기 중이다. “주먹도 쓰고 껄렁하게 살던 내 인생이 해병대 덕분에 바뀌었어. 내 자식들도 가서 도전정신이 뭔지, 해병대 정신이 뭔지 배워서 화끈하 게 살라는 뜻이지.” 해병대 출신이라면 언제든지 제자로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김 원일 요리사. 단, 제대로 된 정신을 갖고 올 것이라는 단서를 잊지 않 았다. 생선과 밥을 조물조물 거리더니 투박한 접시 위에 초밥을 탁탁 올려 놓는다. 일본 왕실에서 쓴다는 특제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고 씹 기 시작했다. 쫄깃하면서도 너무나 부드러운 육질. 그 사이로 탱글탱 글한 밥알이 씹히더니, 고추냉이의 알싸한 맛과 함께 어느새 생선과 하나로 어우러진다. 몇 번 씹고 넘기기 아까운 그 풍부한 맛에 씹고 또 씹는다. 이 맛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맛있다는 말보다 이 맛을 더 잘 표현할 말은 없을 것 같다. 며칠 후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다보니 일전에 먹었던 그 초밥 맛이 떠 오른다. 내가 씹고 있었던 것은 그냥 생선과 고추냉이와 밥 알갱이가 어우러진 초밥 덩어리가 아니었다. 요리에 미친 한 남자가 초밥에 담 아낸 34년 외곬인생의 혼을 씹고 있었던 것이다. Vol. 37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43 Peoples 렇게 모은 돈으로 4개월 만에 빌린 돈을 다 갚고 24평 가게로 이사를 갔다. 가게가 커지자 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당의 땅을 사고 지금의 건물을 지은 게 12년 전이다. 그 동 안 얼마쯤 번 것 같은지 묻자 그는 100억을 불렀다. 하지만 그 돈을 다 책을 쓰는데 쏟아 부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요리사에게 중요한 눈이 망가질까봐 컴퓨터를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쓴 70권 가량의 원고는 모두 노트에 손 글씨로 적혀 있 다. 게다가 대부분이 한문이고 그림도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 놨다. 가 뜩이나 팔리기 힘든 고급요리책인데 그런 원고를 컴퓨터로 옮겨가며 책으로 내줄 출판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때려치워라. 그러면서 출판사를 만들어 버린 거야. 도 서출판 원일. 더러워서 내가 만든다 이거야. 서점에서 책 팔자고 해 도 됐다고 해버렸어.” 입소문을 타고 책을 사려는 사람들의 전화가 식당에 끊이지 않는다. 장부를 들춰보니 미국에서까지 주문이 들어올 정도이다. 한 권에 13 만 원을 호가하는 그의 요리책. 하지만 확실히 그의 책은 질이 달랐다. “된장찌개도 비법을 공개 안 하는 세상 인데, 일본과 프랑스에서 배우 고 34년간 연마한 고급기술을 다 공개하는 거라고. 시계나 가방에도 명품이 있는 것처럼 책에도 명품이 있는 거지. 내 책 사려면 가게로 와서 제 값을 치루고 사가라. 배짱인 거지. 자신이 있으니까.” 내년 2월이면 그의 자서전 ‘김원일의 외곬인생’을 포함한 나머지 6권 의 책이 모두 발간될 예정이다. 촬영에 사용된 그릇이 1,100종류, 촬 영 사진이 50만 컷. 재료비만 2억 원. 그릇 값이 2억 5천만 원, 사진 촬영, 출장비가 3억 8천만 원, 인쇄비용 등을 합하면 10억 원이 훌쩍 넘어간다. 이 정도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하 지만 요리책은 표지의 때깔부터 남다르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사 람이 봐도 그 방대함과 세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제자를 키우고자 한 그의 열정도 한 때는 ‘미쳤다’ 는 소리를 들을 정 도였다. 장인의 밑에서 혹독히 수련하며 일을 배우는 도제식 요리학 원을 연 것은 ’94년 말이었다. 연간 학원비가 2,500만 원이 넘는 학원 을 열어 4기까지 약 80명의 수강생을 받았지만, 이를 끝까지 마친 수 강생은 단 10명이었다. 그 혹독한 방식에 제 발로 나간 학생들도 있 었고, 퇴학당한 이들이 집단소송을 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