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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리를 평가할 사람은 국내에는 없어. 내 책도 마찬가지고. 그 누 가 감히 김원일을 평가하겠나.” 요리사 김원일(53)은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다. 짐작은 하고 찾아간 인터뷰였지만, 그 자신만만함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 다. 젊었을 때 한가락 했다는 그는 딱 ‘부산 사나이’ 라는 말을 떠올리 게 했다. 전역하는 날 찍었다는 사진의 호리호리한 모습은 간데없지 만 자신만만하고 호탕한 그 눈빛만은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 3대 요리 학교인 아베노쯔지 조리사전문학교를 수료하고 프랑스 유학까지 다 녀온 그이다. 장사꾼에게 상도가 있다면 손님에겐 객도가 있다며 싫 으면 먹지 말라고 소리치는 그이지만, 테이블 세 개로 시작한 식당을 Vol. 37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39 Peoples 시계는 최고가가 한화 8억 4천만 원에 달하지만 24개가 전량 판매됐 다. 일본에서 귀화요청을 받았을 정도의 그이지만 어디를 가나 한국 인으로써의 긍지를 잊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세대예요. 36년 간 외세에 의해 국가를 잃어버리고, 전쟁이 일어나서 300만이 넘는 사람이 죽고, 하루에 밥 한끼 먹기도 힘들었던 빈곤이 바로 육십년 전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어요.” 그 대한민국을 벗어나 23년간 외국에 살면서 본 조국의 발전상은 그렇 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1983년 미국 시애틀의 항만에 현대의 간판 이 붙어 있는 것을 본 그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적인 국가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구나. 하지만 과거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요즘의 추세에 대한 걱정도 숨기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면 가끔은 과거를 돌아봐야 해요. 과거를 오늘 날에 반영시켜 승리감을 얻기 위함이 아니에요. 오늘날에 비추어 미 래를 전망하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촉진제. 그것이 과거입니다. 우 리도 분명 내부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문제들이 있어요. 그런 문제는 과거를 비추며 해결해 나가는 거죠.” 너무나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그는 이제 슬슬 한국에 정착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바로크 C&F와 손을 잡고 인천에 문을 연 연구 소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만년을 가는 친환경 도장재로서의 옻의 가 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가장 큰 난관이었던 높은 가격을 해결할 방법 도 찾아냈다. 내년이면 시장에서 옻으로 도장한 친환경 가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웃으며 얘기했다. “저야 순수미술만 해도 밥 벌어먹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 제 지식을 나누고, 또 우리 대한민국을 도와줬던 전 세계에 다시 도움을 주고 싶어요.” 장인 전용복. 까놓고 말해 그는 너무 유명하다. 하지만 소탈하다. 청 바지에 가죽점퍼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나이 어린 사람에게 도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손수 차와 음식을 내주었다. 그 장인의 손. 평생을 옻을 만져 까맣게 때가 낀 듯한 칠예가 전용복 선생의 크고 투 박한 손. 온갖 사회의 멸시와 천대를 견디며 묵묵히 옻칠을 하던 조 선의 칠장이들 손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는 그 선조들이 없었던 들 자신은 존재할 수 없었노라며 고개를 숙인다. “외국을 갈 때 비행기 밑으로 펼쳐지는 우리나라 산하를 봐요. 그럼 웅덩이가 푹푹 파여져 있어요. 마치 우리 선조들과 선배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진흙탕 속에서 걸어간 발자국 같아요. 천민 중에서도 최하 의 천민이었죠.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란 말도 듣고, 정말 최고의 대 우를 받고 있어요. 그런 내 자신이 산하를 바라보면, 우리 선배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진흙탕 속에 남긴 발자국. 그 발자국에 비가 오고 눈물이 떨어지고, 나는 그 곳에 고인 잘 정화된 물을 마시고 있는 존 재구나. 그래서 저는 몸을 낮출 수밖에 없고,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 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한국인 전용복.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 말을 하는 장인 앞에서, 그가 우리와 같은 한국인임이 너무나 자랑스 럽고 숙연하기까지 했다. 음식은 혼이다! 외곬인생 요리사 김원일 해병대 정신으로 독하게 달려온 그의 인생. 그 인생을 알고 먹는 그의 요리는 더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