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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7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27 Focus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개최될 당시, 피아간 더 유리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전초진지 쟁탈전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수도 서울 방 위에 역점을 둔 군사적 보완책의 일환으로 해병대 제1연대는 1952년 3월 17일부터 서 부전선 장단 지구로 투입되었다. 이후 1953 년 7월 휴전 시까지 1년 4개월 동안 판문점 에서 사천강까지 약 11km에 달하는 주저항 선에서 중공군 2개 사단과 목숨을 건 영토쟁 탈전을 펼친 것이 바로 ‘장단·사천강 지구 전투’ 이다. 한 치의 땅도 빼앗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해병대 1개 연대가 중공군 2개 사 단을 격퇴한 것이다. 제1차부터 4차까지 나눌 만큼 장기간의 치 열한 전투에서 해병대는 적의 모든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수도 서울을 지키는 눈 부신 성과를 이뤄냈다. 제1차 전투에서는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 고 파주시 장단면 사천강 일대에서 연대장 김동하 대령을 필두로 중공군의 2차례에 걸 친 기습공격과 3회에 걸친 야간 공격을 막아 내며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승리로 장식 했다. 이후 김석범 대령이 1연대장으로 보직 한 이후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다’라는 전술 로 적 대대규모의 공격을 역습으로 격퇴하 며 2차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중공군의 역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자 해병 대는 수도권 방어 임무의 중요성과 그 적임 자로의 역할을 인정받는다. 해병대 제1연대 가 제1전투단으로 재편성되며 공병중대, 전 차중대 등이 보강되었고 제3차 전투에서 중 공군의 공격을 유인 역습작전으로 또 한 번 막아내는 전공을 세운다. 이후 4차 전투에서 는 통영상륙작전의 영웅인 김성은 대령이 지 휘권을 인계받아 중공군의 2차 공세의 전면 공격을 막아내며 적의 전투의지를 상실시키 고, 이 기회를 이용해 최대의 반격작전을 가 해 큰 성과를 거둔다. 수도권 일대를 성공적으로 방어해낸 ‘장단· 사천강 지구 전투’에서 해병대는 전사 776 명, 부상 1938명의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우리 해병대는 중공군에게 14,017명의 전사 자, 11,011명의 부상자 수에서 알 수 있듯 큰 타격을 주며 현재의 서부전선과 수도 서울 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에 해병대는 당시 이 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은 물론 대한 민국 국회로부터 감사장을 수여받는 등 그 전공을 인정받는다. 명실 공히 ‘무적해병’의 전통을 이어가며 국민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57년이 지난 2010년 10월 16일 경기 도 파주시 전공 선양비 일대에서 ‘장단·사 천강 지구 전투’ 전승행사가 개최됐다. 이 행 사는 이제는 노병이 된 당시 출전 장병들의 공적과 명예를 높이고, 희생된 전몰장병들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지역 안보행사로 마련 되었다. 행사에는 해병대 부사령관과 해병대 전우회 중앙회 총재, 파주시장 등 주요 인사, 해병대 장병 6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전승 추 모행사와 더불어 도라산 파로비 참배식 또한 함께 진행됐다. “형님. 아우가 왔습니다. 형님”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형님을 목 놓아 부르는 노신사의 모습 에 참가자 모두는 57년 전 그들이 흘린 피의 의미를 생각하며 숙연해졌다. 추모행사가 끝난 뒤 파주개성인삼축제에서 는 안보체험관을 운영하여 전투식량 등을 시 민들에게 나눠주고 페이스페인팅을 해주며 국민과 함께하는 해병대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주무대에서 열린 해병대 군악대 공연과 의장대 시범은 국민들에게 60년 전 나라를 지킨 해병대가 여전히 든든하게 그들을 지키 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장단·사천강 지구 전투를 기억하다. 장단·사천강 지구는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2년 3월부터 1953년 7월 휴전까지 대한민국 해병대가 중공 군의 공세로부터 ‘한 치의 땅도 적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사수한 곳이다. 장기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로 해병대 7대 전투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전투. NOW 글 중위 류재민 사진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