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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November 2009 | 해병대 I 장병 가족수기 / 문예활동 내가 속해있는 경기도 재향군인회에서 회장단 및 이사들을 대상으로 안보의식 고취 차원에서 고구려 역사탐방이 계획(9.1-9.5)되어 있어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참가하였다. 특히 나 개인적으로는 이번이 4 번째 중국여행이었지만 내심 중원을 호령하며 한민 족의 기개를 마음껏 펼쳤던 고구려 유적지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두루 살펴보는 여행이라 다소 들뜬 기 분이었고 또한 기대에 차 있었다. 고구려 첫 도읍지를 가다 9월1일 심양 공항에 도착하여 버스로 3시간 30분 을 달려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졸본성이 위치하고 있 는 환인시에 도착하였다. 이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한다. 그것도 약45도 경사에 999계단을 타고 올라가야한다. 젊은 사람이 야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 팀은 대부분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남녀로 구성되어있어 결코 쉽지 않은 코스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통치 했던 자랑스러운 고구려 첫 도읍지를 본다는 부푼 꿈 을 안고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이 정상에 도착 했다. 그런데 막상 성내를 둘러보는 과정에서 도저히 중원을 호령하던 고구려 도읍지라고는 할 수 없을 정 도로 장소가 너무나 협소하였다. 궁터라고 하는 곳이 겨우 30-40평 정도의 빈터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주 몽이 먹었다는 우물(天池), 말의 물을 먹였던 우물, 귀족과 평민으로 구분되어 있는 주거지, 그리고 진지 등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나의 짧은 군사적 식견 을 가지고도 쉽게 거주 인원을 판단할 수가 있을 것 같았고 아마도 1개 보병대대 규모 약 500-600여명 내외의 인원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지역은 누구도 감히 접근하지 못할 天涯의 요새지 였다. 해발 800미터 고지에 남북 1킬로미터, 동서 300미 터에 성벽의 높이는 3-6미터이며 동서남북 모두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일부 능선 으로 형성된 지역은 대단이 협소하여 대부대가 도저 히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장소는 비록 협소하 였지만 주몽(동명성왕)의 대제국 건설을 위하여 雄志 를 키우고, 대고구려의 基礎를 다졌던 유서 깊은 곳 이기에 누구나가 숙연한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특히 이곳은 고구려의 초기 유적들이 매우 많은 곳 으로서 중국 한족과는 전혀 다른 조선민족 의 생활상 을 엿볼 수 있는 유적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고 한 다. 그러나 2003년 6월 24일자 중국의 광명일보(光 明日報)에“고구려족은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이 며 고구려는 중국역사의 일부분이다”라는 기사가 실 리면서 고구려의 발상지인 환인시의 졸본성(오녀산 성)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 및 정비작업에 들어가면 서, 소위 중국의“동북공정”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이곳을 북부여의 주 몽이 건립한 고구려 정권이라 칭하고 2004년에 유네 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또한 주목할 아 !!!!! 고구려... 글∙사진 / 김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