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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www.rokmc.mil.kr | 그루지야 UN 군 정전감시단 임무를 마치고... 첫째는 연합연습시 또는 교범에서나 읽던 내부난민 (IDP)과의 만남이다. 처음으로 정찰팀장(Patrol Leader)을 맡아 정찰을 나갔던 날로 기억한다. 그간 8톤이라는 큰 차량 운전하랴 험난한 도로에 온 신경 을 쓰다 보니 주민들과의 만남도 주위 환경도 미처 인 지하지 못하던 때였다. 정찰로에 펼쳐진 대부분의 건 물들은 모두 폐허가 되어있었다. 불이 타 흑색뿐인 숲 도 있었다. 전쟁의 참혹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 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회색빛 콘크리 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에서 유리라고는 볼 수 없었고 간혹 몇 몇 창문에는 엉성하게 매달린 종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귀신도 살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창문 에서 힘없이 흔들리던 종이 뒤로 어린 여자아이의 얼 굴이 보였다. 차를 세우고 다시 보았다. 그러자 한명 이 아니었다. 이 창문 저 창문에서 아이들이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전쟁 후 집 을 잃은 내부 난민들이었다. 가슴 아프게도 너무나 해 맑아야 할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무표정을 보아야 했 고 부모들 또한 삶에 무게에 지쳐 혼 없이 집 주위를 배회하는 듯 했다. 아이들의 옷은 작고 지저분하고 여 기저기 찢어지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 누어 주고 부모들의 하소연을 한참 들었고 그 내용을 민사참모와 섹터 장에게 보고했다. 그 후 며칠 후 민 사참모가 NGO와 협조하여 그들에게 옷가지류와 음 식을 기부했다고 했고 우리는 다시 그곳에 방문했다. UN차량을 보자마자 아이들이 너무나 밝게 웃으며 달 려온다. 가슴이 찡했다. 우리 정찰 팀 모두 가슴이 찡 했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잠자리에서 가슴 깊은 곳 에서 올라오는 감동과 군인으로서 자부심에 한참이나 잠 못 이루던 그날을.. 두 번째 인상적인 기억은 유치원 봉사 활동이었다. 지역 정찰을 가다가 우연히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었 다. 유치원이라고 믿기지 않는 곳이었다. 전기는 들어 오지 않아 동굴처럼 컴컴했고 장남감도 없었고 책도 없었다. 단지 그곳에 있던 것이라고 부모들을 기다리 는 15명의 어린 아이들의 무표정과 우두커니 서있는 나이 든 선생님 2명뿐 이었다. 우리 정찰팀은 긴 토의 끝에 모든 정찰장교들의 자율 기부를 통해 이곳을 개 선해 주자는 것이었다. 그후 한달간 바쁜 정찰 임무중 에도 우리는 휴가 중인 인원까지 불러들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유치원을 도색하고 수리하고 학용품과 라디오 등을 기부했다. 울먹이며 감사하다고 말하던 유치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핑크색으로 도색된 유치 원에 들어왔을때의 표정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감 동이었다. 또한 유치원 한쪽 벽에 태극기를 그려 넣을 때의 감정이란 근 10년간의 군 생활중에 결코 잊을수 없는 희열이었고 한국 해병대원으로서의 무한 자부심 이었다. 2009년 6월 15일 UN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러시아 의 반대로 그루지야 임무가 종료되던날, 이후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날 아직도 도움을 필요로 하 는 이들을 위험속에 방치하고 가야만 함에 가슴은 너 무나 무거웠다. 훗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오겠노 라고, 또는 내가 다시 왔을때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평화가 정착되어있고 많은 부분 발전해 있었으면 하 고 기원했다. 내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 다. 한국전쟁 참전국 21개국을 모두 초청하려는 정부 차원의 큰 기념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UN군이 최 초로 파병된 전쟁이었고 21개국 190만여명이 참전하 였고 15만여명이 전사하거나 실종, 포로가 되어야만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와서 평 화를 위해 순결한 피를 흘려야 했다. 참전용사들이 가 지고 있을 한국에 대한 애틋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 을것 같다. 그들이 내년에 한국에 방문한다면 무한 감 동에 울컥하고 펑펑 울지 않을까 한다. 군인은 남들이 모르는 곳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시 간속에서 열정과 헌신을 쏟아붓고 무한 감동을 만들 어 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닌가 한다. 해병대 해군본부에서 근무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