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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www.rokmc.mil.kr | 귀신도 모르게 태어난 해병 전차부대 경우도 있었다. 끌어낸 전차는 부서진 정도에 따라 간단 한 것은 20분 만에 수리하고 심한 것은 며칠씩 걸렸다. 당시 전차중대장이였던 박효열 대위의 수기다. 전투가 치열하게 밤낮없이 계속되니까 미 해병 연락장 교인 타부리 중위는 지프차 트레일러에 자기 짐을 잔뜩 실어놓고 언제든지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타부리 중위를 불러서 "짐을 다 실어놓고 본대(미 해병 전차대대)로 가려는가?"하고 물었더니 그런게 아니 라 전세가 하도 위험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고 대 답했다. 나는 필사적인 결의로 말했다. "여보시오 당신도 알다시피 임진강의 다리는 하나밖에 없소. 우리 해병이 다 죽는 한이 있어도 현 전선은 고수 할 것이요. 만일 작전상 상급사령부에서 일시 철수하라 고 한다면 보병부대가 우선적으로 다리를 건너고 그럴 경우 나의 전차중대는 끝까지 남아서 부대의 철수를 엄 호해야 될 것이오. 그리고 우리나라는 당신네 미국같이 부자가 못되는 만큼 이 전차를 버리고 맨몸으로 후퇴할 수는 없소. 당신이 우리 중대의 연락장교로 있는 한 죽든 살든 나하고 생사를 같이 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니요?"그 랬더니 "박 대위 잘 알겠소"하고 나가더니 짐을 모두 천 막 안으로 들여다 놓았다. 그리고는 타부리 중위는 매일 같이 내 방에 와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미 해병대 고문관은 전차가 지뢰를 밟으면 그냥 버려 두고(또 보급될 테니) 몸만 빠져나오라고 했으나, 당시 전차 한 대가 3억환(당시 화폐)이나 된다는 것을 알고 있 던 제3대 해병 전차중대장 조의정(趙義正)대위 휘하 전 차중대원 모두는 불타는 애국심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전차를 끌어내어 수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해병 전 차중대는 미 해병대로부터 인수한 전차 20대를 휴전이 될 때까지 한 대도 잃지 않고 운용하였고, 전차대대로 증 편되었다. 중공군의 T34 전차도 85mm 전차포탄을 아군 진지에 쏘아댔다. 한국전쟁 초기에 압록강을 넘어온 중공군은 은밀하게 참전하느라고 야포나 전차를 가져오지 않았으 나, 전선에 정체를 드러내고 부터는 야포와 전차도 들여 왔다. 1952년 초에는 이미 중공군 2개 기갑사단이 보유 한 T34 전차 520대가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즈음 중공 군은 전선에 8개의 포병사단을 운용했고, 만주에는 1,250대의 소련제 항공기(주로 전투기)도 배치하여 병력 증강과 함께 장비도 현대식으로 크게 개선하였다. 그러 나 중공군 전차대는 제공권을 쥐고 있는 미군기가 겁나 서 주간에는 나뭇가지를 전차 위에 덮어 위장하고 있다 가,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 전 해를 등지고 나타나 국군 진지에 포탄을 쏘아대고 신속하게 도망하곤 하였다. 서 쪽에서 공격해오는 중공군은 석양을 등지고 있으므로 햇 빛 때문에 아군이 관측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 런 공격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군은 나뭇가 지로 위장한 중공군 전차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고, 적 이 전차포를 사격할 때마다 번쩍이는 불빛만 보일정도였 다. 이런 중공군 전차대의 공격법에 맞서 동쪽에 위치한 해병 전차부대는 아침(오전 9시 이전)에 태양이 솟아오 를 때를 이용하여 중공군 진지에 전차포 사격을 하였다. 전쟁초기에 북한군 전차에 아군 전선이 유린당한 것을 보복하기 위해서 해병 전차부대는 공산군 전차와 반드시 전차전을 치르고 싶었으나, 미 공군기를 두려워하는 공 산군 전차가 대낮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해병 전차부 대는 T34 전차에 복수전을 펴지 못하고 휴전을 맞았다. 그러나 아군은 제공권을 이용하여, 낮에 항상 상공에 떠있는 미 해병대 L19 연락기가 적진지의 목표물을 관측 하고 연막탄을 쏘면 곧 미 해병 전투기가 나타나 목표물 을 공격하였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 위해 사전에 약 속을 하고 아군 진지에 설치해 놓은 대공판 색깔로 미군 기는 오폭을 방지하고 적군만 공격하게 되는데, 미군기 가 나타나면 공산군도 즉각 대공판을 아군과 같은 색깔 로 바꾸었다. 국군에 침투한 스파이나, 관측을 통해 공산 군도 그때그때 아군의 대공판 색깔을 알아낸 것으로 보 인다. 그러나 한∙미 해병대는 적의 이러한 술책을 간파 하여 잘 대응하였다. 해병 제1전투단은 서부전선(도라산, 장단지구전선)에서 53년 7월 27일 휴전을 맞았으나 정전 후 여단 증편을 거쳐 55년 1월 15일 파주군 금촌면에서 해병 제1상륙사 단으로 증편되었으며, 그 후 59년 3월 12일 포항으로 이 동할 때까지 무려 8년간을 주둔하며 적과 대치하면서 수 도방어라는 중책을 완수 하였으며, 한편 해병 전차대대 는 기동과 화력으로 공격과 방어를 지원하고 전과를 확 대하여 해병사단 작전수행에 크게 기여하였다. 해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