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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농사를 동생은 8년째 짓고 있다. 바로 사람 농사다. 이제 동생이 해병대에 들어간 지 8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군을 선택한 동생 덕분에 시골에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다. 동생은 해병대원들과 함께 떠돌아다니며 살고, 나는 일반적인 농사라고는 볼 수 없는 기업형 농장을 이끌어 가며 살고 있다. 소득이라고는 월급 밖에 없는 동생이나,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농장을 꾸리는 나나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동생은 해병 대원들에게 이 세상을 성공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심어 주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고, 나는 소외되고 천대 받는 농업을 살려보고자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다. 막내동생과 나의 삶은 아무런 상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농장을 꾸려가고 있는 곳은 경기도 포천의 최북단 휴전선 인근 지역이다. 민통선과 불과 몇 분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에는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대남방송이 들리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는 우리나라 방송보다 북한 방송이 더 잘 들렸 었다. 어릴 시절 집안 형편이 악화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휴전선 인근까지 이사를 오게 되면서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해방 당시 38선 이북 지역으로 휴전선이 생길 때까지 북한의 통치를 받던 곳이다. 공산주의 체제 하의 3년의 시간은 대대손손 이 고장을 지켜오던 토박 이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주었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푸념만 늘어놓으며 불평불만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이비 종교와 잘못된 사상은 한번 빠져들고 나면 돌이킬 수 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북한은 군복무를 하고 있는 막내 동생에게나 농사를 짓고 있는 나에게나 정말 위협적인 존재이다. 꼭 훈련이 끝나거나 주말이 되는 시점이면 쌩쇼를 하는 북한 때문에 동생은 말은 안 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고, 북한의 도발행동은 환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입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구조의 특성상 자재의 가격은 올라가고, 한번 올라간 물가는 상황이 회복이 되더라도 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농산물의 가격은 소비 감소로 이어져 폭락하게 되고, 제법 큰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로서는 피해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해병대에 간 막내 동생이 나라를 잘 지켜주고, 부하들을 잘 이끌어서 좋은 인재들이 사회로 나오게 될 것이고, 해병대 출신의 훌륭한 인재 들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편 가르지 않고 모두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고,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농업분야에도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빽이 되어 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참고로 나는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대한민국 방위 출신이다). 하루 빨리 북한이 공산주의의 허상을 깨닫고 스스로 화합의 길을 열어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이 하나 되고, 통일된 자유 대한민국의 시대가 열리길 소망해 본다. 그 날이 오면 삼형제의 소망 이였던 부농의 꿈을 이루어 가고 싶다. (해병대를 사랑하는 서포터스입니다.) 삼형제의 꿈 www.rokmc.mil.kr•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