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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June 2009 해병대 | 특별기고 월남의 어제와 오늘 나는 월남전에 소대장(1965), 중대장(1970)으로 두 번 참전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 다시 월남 땅을 밟은 것은 37년 만이었으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의 월남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스쳤다. 오늘의 월남(통일 베트남)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 개혁, 개방을 하고 있지만 외관상의 모습은 별로 달라 진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상처와 달라진 모습은 너무도 많았다. 우선 나라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분단된 국가로 북은 월맹, 남은 자유월남이었으나 자유월남은 간데없고“Vietnam”이라는 통일된 하나의 사회주의 국가가되었다. 자유월남의수도였던사이공시는호치민시로 바뀌었다. 티우 대통령인 살던 대통령궁은 통일궁으로 바뀌었고, 거기에는 통일 대통령인 호치민의 영정과 동상이 자리 잡았고 이제는 관광지가 되었다. 우리는 당시 월남 수도 싸이공으로부터 불과 40㎞ 떨어진 곳에 월맹군과 베트공에 의해 구축된“구찌 터널”을 답사 했다. 수도 싸이공 코앞에 월맹군 약 2개 사단이 주둔할 수 있는 땅굴이 구축되었음을 미군과 월남군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놀라움을 더했다. 체구가 작은 월남인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땅굴을 60대 후반의 내가 사무국장들과 같이 속옷까지 흠뻑 젖어가며 기어서 30여분간 실전체험을 해본 것은 잊지 못할 값진 추억이다. 한국군이 걸어온 발자취 답사 우리는 다음 일정으로 당시 월맹과의 접경지역 이었던 북부 다낭 지역으로 향하였다. 이 지역에는 당시 월남군 최정예 1군단, 미 육군 24군단, 미해병대 제3상륙군 사령부가 위치하였고, 약 20㎞ 남쪽 호이안은 해병대 청룡부대 작전지역 이었다. 나는 중대장을 마치고 미 해병대 제1사단에 연락장교로 파견되었기에 다낭은 남다른 감회가 깊었던 곳이다. 미해병대 비행단이 위치하던 마블 마운틴(Mable mountain) 정상에서의 다낭 시가지 관망은 평화 스럽기만 했다. 살벌했던 전쟁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지금은 호텔과 휴양콘 마블 마운틴(Mable mountain)정상으로 올라 가는 길(道) 만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남쪽 청룡부대가 위치하고 있던 호이안시 까지는 신설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관광객들의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청룡부대 본부의 모습은 간데없고 청룡마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파괴된 채 쓰러져 있는 정문 기둥이 유일한 흔적이었다. 내가 중대장을 하던 라이니 부락을 지날 때는 또 한번 감개무량했다. 나는 이 지역에서 중대장을 하면서 주로 적성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변과 현지 보급품 및 식량을 조달하는 하미타이 호수에 이르는 길목을 차단하는 매복 작전을 10 여회 성공시켜 매복의 왕자, 독수리 중대 그리고 주월사 소부대활동 최우수부대가 되었다. 화랑무공, 인헌무공, 월남엽송훈장을 탔던 곳이며 한국군 파병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 박형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