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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June 2009 해병대 | 특별기고 였다는 점에서 한국 해병대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다. 항상 해병대와 함께 한 손원일 제독 6・25전사를 보면 손원일 제독의 해병대 사랑은 곳곳에서 들어 난다. 그가 인천상륙에서부터 104고지를 거쳐 서울 시가전 까지 신현준 사령관을 통하여 해병대를 진두지휘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는 매우 많다. 내가 서부전선 장단사천지구에서전투하던때에도치열한상호포격전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문하여 최일선 엄폐 진지에서 그에게 브리핑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직접 지휘한 경우 외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는 늘 해병대가 편하도록 보살폈다. 서울 탈환이후 육군 3군단 지휘 하에 엄동설한의 동해안 산악지구 작전을 마친 다음 김성은 연대장과 내가 우리 해병대 발전을 위해 미 해병대의 작전통제를 원하자 손 제독은 흔쾌히 들어 주었다. 해병대에서 해군의 필요한 인사를 요청하면 손원일 제독은 즉각 이를 실행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본인(공정식 해군 소령)을 필요한 인사라고 김성은 대령께서 요청 하자 손 제독은 즉각 그 날로 해병대로 옮겨 주었다. 손원일 총장은 해병대에 관해서는 신현준 초대 사령관을 비롯하여 역대 사령관들에게 모든 것을 전적 으로 위임하였고, 다만 해병대가 처리하지 못하는 예산 등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지원을 요청 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손원일 제독의 관심과 지원으로 성장한 해병대와 해군의 관계였으므로 나는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맹기 제독의 해군참모총장 취임 후 전속부관들을 서로 교환했고 수시로 방문하여 친교관계를 유지하다가 그 직을 떠나 작고할 때까지 돈독한 우의를 가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처럼 모군 해군과 해병대가 긴밀히 협조하며 최상의 모범적 밀월(蜜月)관계를 가진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해병대사령관인 나부터 손원일 제독의 뜻을 항상 기려 해병대의 뿌리는 해군 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병대와 해군 모두에게‘해군과 해병대는 한 뿌리다’ 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해병대 장군 진급, 예산 신청 등 해병대의 모든 문제도 해군참모총장실로 찾아가 의논하곤 했다. 이에 동기 친구였던 이맹기 참모총장은 미안해했다. “나한테까지 오지말고 해병대사령관이 직접 처리 하지.” “해병대의 법적 상관은 미국의 해군성 장관격인 해군참모총장 당신이야.” 이렇게 나는 해군참모총장의 법적 위치를 지켜 주었다. 선례는 이어져 그 후임인 함명수, 김영관 해군참모총장 역시 해병대의 일이라면 최선의 협조를 아끼지 않았는데, 그들 역시 해병대와 해군의 관계가 손원일 제독까지 올라가는 뿌리깊은 관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군 체제지만 해군에 2개 구성군 해병대는 해군에서 갈라져 나온 조직이므로 해병대와 해군은 형제다. 하지만 이러한 끈끈한 전통의 해군과 해병대의 형제 관계가 어찌된 일인지 전래에 이르러 소원(疎遠)해지고 있음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나는 지금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떠올리며 두 조직의 단결을 강조하곤 한다. 해병대와 해군은 같은 뿌리에서 성장 했다는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되며, 해병대의 전력 증강과 발전이 바로 해군에 그대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