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page

84 DECEMBER 2008 www.rokmc.mil.kr ■ 열린광장 수단군 장교들과 만나면 간혹 수단과 한국을 비교하며 수단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려 했었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가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의 경제발 전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수단도 할 수 있다고, 해 보 라고 하였으나 씁쓸한 대답 뿐이었다.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이니까 가능했겠지만 100여개 이상의 종족으로 의 견 조율이 되지 않는 수단에게는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 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인 이야기였다. 팀사이트 근무를 마무리 짓고 누렇게 변하는 들판을 보면서 카르툼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많은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자정에도 30도를 넘는 열기 속에서 스펀지로 만든 침대가 젖을 만큼 땀을 흘렸고 샤 워 시설이 없어 화장실에서 물병으로 몸을 적시면 그나 마 쉽게 잠들 수 있었던 민가 생활, 생존을 위해 쌀, 감 자, 양파 만으로 식사를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사람 보다 많은 파리들 때문에 육류 구입을 포기했었고 대안 으로 동료들과 산 닭을 구입해 야전취사를 했던 일, 정수 를 해도 뿌연 색을 띄기에 반드시 끓여 먹어야 했던 지하 수, 그나마 단수가 되면 밥 짓는 것을 미뤄야 했던 일, 한밤중에 오한과 고열이 반복되는데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 아침까지 버티다가 병원에 갔던 일, 샤워장에 뱀이 들어가 있어 캠프 거주자들이 기겁을 했던 일, 갑작스레 내린 호우에 휴가 나갈 헬기편이 취소되어 의기소침해하 던 동료를 지켜보던 일, 임무 중에 여동생의 갑작스런 사 망 소식을 듣고도 당장 달려갈 수 없어 밤새 울던 동료의 울음소리...... 카르툼에서의 체크아웃 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는 돌아오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면서 수단을 떠 났다. 1년만에 돌아온 한국, 휴가와는 또다른 느낌이고 떨어 진 낙엽들과 옷 속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UN 수단 임무단에서의 경험과 기억들은 평생 어디에 서도 얻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미약한 힘이지만 어렵고 힘든 나라의 국민들을 돕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들은 피부색이 다를 뿐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과 오늘 내가 한 행동들이 그들의 미래를 밝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그곳에 있었던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고 힘들었던 기억 은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