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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www.rokmc.mil.kr JUNE 2008 ● 해병대 발자취 그녀 가 우리 해병대에 붙여준 별명이“귀신잡 는 해병대”(They might capture even devil)다. 인천상륙작전에도 종군한 유일한 여기자인 그 녀는 통영상륙작전에 성공한 우리 해병대를‘They might capture even devil’(귀신 잡는 해병대)로 표현하 여 전 세계에 타전하여 대한민국 해병대의 새로운 지평 (地平)을 열며 자랑스러운 전통 수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마게릿 히긴스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아버지와 프랑스 인 어머니 사이에서 1920년 9월 3일 홍콩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중학교까지의 교육을 어머니의 나라인 프랑스에 서 받았기 때문에 12세까지는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잘했고, 중국어에도 능숙했다. 1923년에 미국으로 가게 된 그녀는 캘리포니아에서 고 등학교와 대학(UC버클리)을 다녔으며, 뉴욕으로 옮겨가 컬럼비아 대학의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 하였다. 1942년에 석사학위 취득과 동시에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정식기자로 채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 신문사는 프랑 스어에 능통한 그녀를 유럽특파원으로 보냈다. 종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및 동·서유럽의 긴장고조 등을 뉴 욕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하였다. 1947년에는 베를린 지 국장이 되었으며, 뉴욕 여기자클럽으로부터 최우수 해외 특파원상을 받았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지 이틀 만에 가장 먼저 서 울에 도착한 4명의 종군 기자 중 한 명인 히긴스는 한국 전 기사로 1951년 여성 최초로 국제보도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 1951 년 7월 11일자 커버스토리 인물로 다뤄졌다. 슈피겔은 히 마가렛 히킨즈? 뉴욕타임즈 기자? 잘못 알려져 있다. 그녀의 이름은“마게릿 히긴스(Marguerite Higgins, 1920~1966)”이며, 6ㆍ25전쟁 당시“뉴욕 헤럴드 트리뷴”(New York Herald Tribune) 특파원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와 인연을 맺고 졸업 후 정식 기자가 되 어 제2차 세계대전과 6ㆍ25전쟁에 종군했으며, 베트남 전쟁이 시작될 무렵인 1965년 초 인도차이나 반도 취재를 떠나 라오스에서 취재 중 급성 풍토병에 걸 려 미국으로 귀국하여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1966년 1월에 아깝게도 45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6ㆍ25전쟁 최초의 미군 전투에 종군하여 생생한 뉴스를 보낸 그녀에 관한 표 현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얼굴에 화장을 하는 대신 먼지와 진흙을 뒤집어 쓰고 다녔던 소녀” “이브닝 드레스보다는 군복이 더 잘 어울렸던 여성” "개천에서 목욕하고, 숲 속에서 볼일 보는 여자" "남자보다 더 용감한 아름다운 여자" 마게릿 히긴스의 귀신잡는해병대 ♣ 한국전쟁 종군여기자 마게릿 하긴스 등 관련 각종 문헌 및 인터넷 자료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연평부대 부부대장 중령 박 종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