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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www.rokmc.mil.kr JUNE 2008 ● 해병대 발자취 학살 등 북한군의 마지막 만행으로 피폐한 상태였다. 미 해병대 제1사단장 스미스 소장은 인천시를 긴급복구 하기 위하여 9월 18일 오후 초대 임시 시장취임식을 거 행하여 상륙군 사령관 명의로 표양문씨에게 시장 임명 장을 수여하고 인천수복의 기쁨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 게 되었다. 한·미 해병대 및 육군은 계속해서 경인가도를 따라 부평으로 진격하여 북한군의 주력을 격멸하여, 9월 20 일부터 수도 서울 탈환작전을 개시하게 되었다. 이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작전이었으며, 서해안의 극심한 조 수간만의 차와 협소한 수로 등의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 며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그 여세를 몰아 수도 서울을 조기 탈환하여 9월 27일 한국 해병대가 중 앙청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 함으로써 90일간의 적치하 에서 고통과 실의에 빠진 인천과 서 울시민에게 자유를 되찾게 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정치적 심리 적으로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하였고, 북한군의 병참선 차단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의 전투의지를 상실 하게 하여 총반격 작전의 계기를 마련한 역사적인 작전 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은 적 사산 1만 4천 명, 포로 7천 명의 대전과를 올린 반면, 아군은 미 해병 대 제1사단 2,450명, 한국 해병대 4백여 명, 미 육군 제 7사단 32연대 350여 명의 전사상자를 내었다.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의의를 보면 다 음과 같다. 인천상륙작전은 인천과 서울에서 공산군을 몰아낸 정 의의 작전으로 한국전쟁을 수세에서 공세로 완전히 반 공중에서 본 인천상륙 작전도(19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