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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 www.rokmc.mil.kr JUNE 2008 75 제2단계는 인천 일대에 해단 두보를 확보하는 작전으 로 당일 17시 30분 미 해병대 제5연대(-)와 한국 해병 대 제1연대는 상륙주정으로 적색해안인 만석동 지역으 로 상륙하여 5m의 암벽을 사다리로 기어오르는 상륙을 감행하였고 미 해병대 제1연대는 상륙돌격 장갑차로 청 색해안인 송도해수욕장의 서부 지역으로 상륙하여 상 륙돌격 장갑차에서 사다리를 타고 5m 암벽을 넘어 상 륙을 감행하여 인천을 방어하는 북한군 인천경비여단 과 제8사단 및 31사단을 격파한 뒤 해안 두보를 확보하 였다. 그 후속 제대로 9월 18일 미 육군 제7사단과 9월 24 일 한국 육군 제17연대와 해병대 김성오부대가 인천에 상륙하여 한·미 해병대가 함께 수도 서울 탈환작전을 수행하고 낙동강 전선에서 미 8군은 총반격 작전을 감 행하게 되었다. 당시 신현준 사령관이 지휘하는 한국 해병대는, 9월 15일 17시 30분에 적색해안인 인천 만속동해안에 상륙 하여 9월 16일부터 인천시가지 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인천 시가지 소탕작전은 경인철도를 경계로 남쪽에는 해병대 제3대대가 응봉산 일대의 도심지역을 소탕하 였고, 북쪽에는 해병대 제1대대가 담당하였다. 북한군은 인천지역을 벗어나 대부분 도주한 것으로 보였으나 상당수가 민간인 복장으로 변장하여 주택가 에서 은거하고 있었다. 해병대 제3대대는 응봉산과 하인천역을 경유하여 시 청을 탈환하였다. 인천시청 탈환시는 국군이 인천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은 인천시민들이 대한민국 해병대 용사들을 보고 적 치하 3개월간 고통과 설움이 북받쳐서 소리내어 울거나 살아남은 기쁨에 흥분하여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기도 하였으며, 인천시가지에는 태극기의 물결이 점점 불어 가고 있었으니, 이 어찌 감격의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인천경찰서로 진출한 해병대 제3대대 용사들은 북한 군에 의해 많은 시민들이 구치소 안에서 학살당한 참상 을 목격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으며 인천시민들의 적 극적인 협조와 도움으로 시가지 소탕작전을 마치고 도 원공원에 집결하였다. 한편, 해병대 제1대대는 만석동과 화수동 일대를 경 유, 송림동을 거쳐 현 선인학원까지 진출하여 시가지 소탕작전을 마치고 야간 방어 진지를 구축하였다. 한국 해병대의 신속 과감한 소탕작전으로 인천시의 질서와 안정이 회복되었으며 9월 17일에는 인천을 완전히 수 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천시가지는 적치하 3개월간 약탈과 방화, 인천시가지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해병대 화염에 쌓인 인천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