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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의 꿈은 의사였다. 사람들의 목숨을 구 하는 의사. 그러다 시간이 흘러「형사 25시」 를 보며 정의를 수호하는 형사가 되고 싶었고, 형사는 곧 변 호사로바뀌었다가다시판사가되기도하였다. 그 이후로도 나의‘꿈’은 몇 번의 변화를 되풀이하다 결국 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만한 감 동을 만드는‘공연 기획자’로 굳어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학진학도했다. 이후지난2005년3월대학졸업과함께군복무를위해해 병대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한‘군대’는 나의 이런 꿈에 걸림 돌이될것이라생각했다. 일반병사로군에입대하기엔너무 늦은 나이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장교 생활이었으니까… 그때까지만해도확실히그랬다. 그래도나름대학전공을살 려 정훈병과를 지원했지만 처음 부대를 밟는 내 머릿속에는 3년 동안 순탄치 못한(?) 군 생활을 하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 이가득하기만했다. 처음 일주일 동안 그 두려움은 곧 현실로 다가오는 것만 같 았다. 지휘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허둥거렸고, 선배들의 격려와 질책은 제2외국어처럼 들릴 정도였다. 처음으로 장병 정신 교육자료를 제작하여 상관에게 보고했을 때, 빨간 펜으 로가차없이수정되며보고서하단에“20점”이라고적힌점수 를보았을때, 오기가생겼다. ‘내반드시전역하기전에이점 수를“100점”까지끌어올리고말리라.’ 해병대가 나에게 적막한 어둠이 아닌 따스한 빛으로, 수동 적이 아닌 적극적인 삶의 현장으로 다가왔던 순간은 그때부 터였다. 연대정훈장교로있으면서 내가만든그무언가로우 리연대를따뜻하게변화시키리라는일념하에서서히해병대 에 적응해 나갔고, 해병대가 내 인생의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도있다는긍정적인사고가움트기시작했다. 2006년 10월, 드디어 막연한 나의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 는좋은기회가찾아왔다. 국방부「병영문화예술교육시범사 업」이 바로 그것. 이 교육을 통해 나는 소외된 계층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노리단’을 만나 부대 내에서‘해병대 노리 단’을 창설할 수 있었고, 이 팀을 이끌고 각종 행사와 사회복 지시설등을방문하며부족함없는공연을할수있었다. 특히, 2007년 포항 국제 불꽃축제의 피날레에서는 전국에 서모인50만명의사람들앞에서우리노리단이멋지게공연 을하는모습을보며, 막막했던해병대라는조직을통해나의 꿈이현실화되고있다는생각에눈물을참을수가없었다. 전역을 한 달여 남겨두고 있는 지금. 누군가 나에게‘네가 겪은 군 생활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내 인생의 스승을 만난 소중한 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전역 후에는 군 생활을 통해 인연을 맺은 노리단에 입단할 것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여계속공부할목표가생겼다. 나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준 해병대에 서의 지난 3년, 난 3년 동안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스승을 만 났다. ♣ 최원민 중위는 해병대 제1사단 7연대에서 근무하였으며, 6월 30일 전역하였습니다. 해병대 제1사단 7연대 중위 최 원 민(사후99기) > > >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 www.rokmc.mil.kr JUNE 2008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