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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하얼빈의거와 순국 100주년의 성찰 100 군사연구 제129집 다섯째,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풍진시대이다(弱肉强食 風塵時代)>와 <말은 보살 아닌 것이 없지마는 하는 짓은 모두가 사납고 간특하다(言語無非菩 薩 手段擧皆虎狼)〉〈해가 뜨면 이슬이 사라지니 천지이치에 부합하도다 해가 차 면 반듯이 기우나니 그 증조를 깨닫지 못하는도다(日出露消兮 正合運理 日孟必昃 不覺其非)> 등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정책을 견책(遣責)한 것이다. 여섯째,〈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 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지사와 인자는 자 기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志士仁人 殺身成仁)〉등은 안 의사의 결연한 의지와 강인한 기개를 읊은 자율시구인 것이다. 일곱째, 유교의 사서삼경(四書三經)이나 성현의 명구를 본받아서 구국 교육관이나 정의관을 표현한 유묵이다. 예컨대〈이를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 든 목숨을 바쳐라.(見利思義 見危授命)〉은 논어(論語) 헌문(憲問)편 문구를 본떠 안 의사의 애국적 국가관을 실천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을 결집한 것이라 할 수 있고,〈글공부를 넓게 하고 예법으로 몸을 단속하라.(博學於文 約之以禮)〉나〈하루 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생긴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등은 성현 의 명구를 빌어 그의 구국교육사상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덟째,〈경천(敬天)〉이나〈극락(極樂)〉〈천당지복 영원지락(天堂之福 永遠之樂)〉 등은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안 의사의 돈독한 신앙심을 휘호한 유묵인 것 이다. 이와 같은 안 의사의 유묵은 우선 ‘신품(神品)’이라고도 평론 49)되는 예술적 품 격은 두고라도 거의가 다 한국을 침략한 적국 일본이며 그것도 자기를 무도하게 ‘사형’으로 몰아넣는데 협력한 제국주의 하수인들인 법원 형리(刑吏)나 감옥 옥리 (獄吏)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작성하여 주었던 것들이다. 50) 안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고《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할 무렵 “그때 법원과 감옥소의 일반관리들이 내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장을 사 넣고 청구 49) 계봉우,《만고의사 안중근》, 앞의《안중근전기전집》, 517~518쪽. 50) 근년 일본에서 안중근연구회장도 지낸 鹿野琢見 변호사는 1910년 4월 여순법원에서 안 의사의 예심과 公判, 그리고 암매장까지 끝내고, 귀임하는 園木末喜 등 파견자를 포함한 관련 33人의 刑吏 獄吏 등의 기념사진을 한 장을 보관하고 있다. 그 안에는 고등법원장 平石氏人과 眞鎬十藏 재판장 園木末喜 등이 포함되었다. 안 의사의 휘호는 대개 이들에 게 주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