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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97 안 의사의 장대한 우국광세(憂國匡世)의 시정(詩情)을 결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계봉우는 그의《만고의사 안중근전》에서 “그러면 공(안 의사)은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강림하온 시신(詩神)이라 할지며 동해상 봉리방정에 내왕하는 시선(詩仙)이라 할지며 무궁한 이 세상에 첫째가는 시왕(詩王)이라 할지니라” 라고 격찬하여 안 의사를 ‘시신(詩神)’ ‘시선(詩仙)’ ‘시왕(詩王)’으로까지 칭예(稱 譽)하고 있다.” 43) 한편 여러 필적 중에도 유별한 것은 1909년 초 엔치아(煙秋) 하 리(下里)에서 단지동맹시 12인의 혈맹동지들의 선혈을 모아 태극기에 안 의사가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혈서한 필적인 것이다. 44) ‘대한독립기(大韓獨立旗)’라고 도 부르는 이 혈서된 태극기의 원본은 중도에 산질되었는지 전래되지 않으나 엽 서로 만든 사진이나 그밖에 보도사진 등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 의사 의 조국에 바친 뜨거운 독립정신(獨立精神)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은 위에 든 하얼빈의거 직전에 작사 친필한〈장부가(丈夫歌)〉이다. 공판정의 증 거물로 압수 제시된 이 장부가는 한문과 국문의 2종으로 안 의사의 결연한 의거 결의를 그대로 실증한 절품인 것이다. 그 보다도 동양평화를 자임(自任)하는 영웅 의 기풍이 출만된 시문이라 볼 수 있다. 45) 그밖에도 안 의사 일행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 도착 후 대동공보(大東共 報) 주필 이강(李剛)에게 보낸 간찰이 있다. 안 의사가 작성하고 우덕순(禹德淳) 과 연명날인 46)까지 한 이 간찰은 현지에서의 의거계획 추진상황과 자금융통 등 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도 공판정의 증거물로 제시된 것으로 ‘대한독립만 만세(大韓獨立 萬萬歲)’라는 구절로 결미(結尾)된 작품이다. 안 의사의 또 다른 필적은 빌렘신부에게 보낸 2통의 엽서가 실물대로 전한다. 하나는 망명전인 1906년 1월 6일자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망명후인 1908년 10월 43) 계봉우,《만고의사 안중근전》, 앞의《안중근전기전집》, 518쪽. 44) 윤병석,〈안중근의 동의단지회 보유〉,《한국독립운동사연구》32, 2009, 95쪽. 45) 계봉우는 앞의《만고의사 안중근전》에서 秦始皇을 죽이려던 刑卿의《易水歌》와 비교하 여〈易水歌〉는 ‘바람이 술렁거림이여 易水가 차도다. 장사가 한번 감이여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다’함이 우리 후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동정에 눈물을 흐르게 한다마는 공의 詩歌 (丈夫歌)에 비교하면 일의 성패는 고사하고 남을 위하여 원수를 갚음에 그 詩歌다운 가치가 없나니라’라고〈丈夫歌〉를 보다 높이 평론하였다. 46) 이 간찰에 날인된 우덕순의 도장은 ‘漢陽’, 안의사의 것은 중앙부분에 태극문양과 그 둘 레에 ‘COREAN THOMAS’라고 세례명을 각제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