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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하얼빈의거와 순국 100주년의 성찰 96 군사연구 제129집 Ⅵ. 안중근의 시문과 유묵 안중근 의사는 여순감옥에서 143일 동안 투옥생활 중, 상술한 바와 같이 자신 의 떳떳한 생애와 평화사상을 밝히는《안응칠역사(安應七歷史) 》 》 》 와 미완성의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 》 》 을 저술하였다. 또한 신품(神品)과 같은 유묵을 현재까 지 밝혀진 것만도 59폭을 남겼고, 그밖에 하얼빈 의거 전후에 쓴 몇 가지 진귀한 필적과 탁월한 시문(詩文)을 남겼다. 또한 안 의사는 연해주에서 활동 시『해조 신문』에 기고한〈인심결합론(人心結合論)〉과 단지동맹 시 지은〈동의단지회취지 서(同義斷指會趣旨書)〉를 혈서하였고, 여순감옥 수감 직후《안응칠소회(安應七 所懷)》 》 》 와《이토 히로부미 죄악(伊藤博文罪惡) 》 》 》 을 연필로 기술하였다. 또한 순국 직전〈모주전상서(母主前上書)〉등 6통의 유서를 남겼다. 또한 안 의사 망명 후 연해주에서 본제(本第) 정근(定根)과 공근(恭根) 및 친구 김문규(金文奎)에게 보 내 서한 3통이 일군헌에 압수되어 일역(日譯)된 것이 전한다. 안 의사의 이와 같은 저술․유묵과 관련하여 각별히 유념할 문학작품은 그의 탁월한 시문(詩文)이다. 이것들은 대개의 경우 옥중에서 휘호한 유물 중에 포함되 어 있고, 얼마간은 그의《안응칠역사》등 다른 저술과 자료 속에 수록되어 있다. 안 의사 공판전후부터 신문지상에 보도되기도 하여 식자의 주목을 끈 이 시문을 《만고의사 안중근전 》 》 》 을 찬술한 계봉우는 특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안 의사는 소년시절 고향에서 부친을 따라 소요로 번진 동학농민군을 격퇴하여 용명을 떨친 이래 망명 후 연해주에서의 의병항전과 하얼빈에서의 의거결행에 이르기까지 일관한 상무적 기풍과 군략적 행적으로 말미암아 그의 문예적 사유 (思惟)와 애국적 시문은 크게 현양되지 못했다. 그의 시문 중에서도 하얼빈 역두의 장거(壯擧)를 앞두고 우덕순과 화답할 때 읊은〈장부가(丈夫歌)〉를 비롯하여〈임 생각 천리길에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 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 이 정을 버리지 마소서(思君千里 望眼欲穿 以表寸誠 辛勿負情)〉〈천지가 뒤집어짐이여 의사가 개탄하도다 큰집이 장차 기울려 짐이여 한 가지 나무로 뻗치기 어렵도다(天地飜覆 志士慨歎 大廈將 傾 一木難支)〉〈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 를지라도 기운이 구름과 같도다(丈夫難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사람의 마음 은 오직 위태하고 도의 마음은 오직 미묘하다(人心惟危 道心惟徵)〉등의 시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