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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하얼빈의거와 순국 100주년의 성찰 92 군사연구 제129집 한국 독립수호에 머물지 않고 동양평화를 이룩하려는데 미치고 있음을 확증하고 있다. 안 의사는《안응칠역사》를 저술하고 이어《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기술하 다가 일인의 위약으로 미완인 채 순국하였다. 이 저술은 그의 한국의 독립 뿐 아니 라 나아가 동양평화를 위한 경륜과 사상을 밝히려는 것으로 생각된다.《동양평화 론》은 서(序)와 전감(前鑑), 현상(現狀), 복선(伏線), 문답(問答)의 5편을 구성하였으 나 기술한 것은〈서〉와〈전감〉뿐이다. 그도〈전감〉은 끝을 맺지 않은 것 같다. 이와 같은 미완성의《동양평화론》과 그밖에 그가 남긴 언행을 통해 그의 독립사 상과 동양평화론을 정리하면 그 골간이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3국이 각기 서로 침략하지 말고 독립을 견지하면서 서로 상호 부조(扶助)하면서 근대 ‘문명국가’를 건설하여 서세동점의 서구제국주의를 막을 때 이룩될 수 있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제 침략자들이 내세우는 동양평화론은 겉으 로는 같은 것 같으나 그 내용과 논리는 판이한 것으로 그들은 이미 탈아론(脫亞 論)에 빠져 황화론(黃禍論)을 빌미로 동양의 패권을 잡아 그들의 동양 각국에 대 한 침략주의를 합리화시키려는 것이다. 따라서 안 의사는 그를 정면 반대한 것이 다. 특히 이토가 이와 같은 동양평화론 추진에 앞잡이가 되어 추진하는 대륙침략 정책을 계속 강행하면 서구열강의 동양침략에 기회와 터전만을 마련하는 것이 되 어 장차 동양전체가 백년하청(百年河淸)의 전란(戰亂)에 휩싸여 장차 수십억 동 양인민이, ‘까맣게 타죽는 참상(黑死慘狀)’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6) 그 러므로 안 의사는 공판정에서 이토총살을 “동양평화를 직힌다” 37) 는 정의의 응징 으로 답변하면서 하얼빈의거를, ‘동양평화의전(東洋平和義戰)’이라고 기술하였 다. 38) 그러므로 박은식은《안중근전》의 서론에서 “안중근을 그의 역사에만 근거하여 논한다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지사(志士)’ 일뿐 아니라 한국의 국구(國仇)를 갚은 의사[烈俠]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말(지 사와 의사)은 안중근을 다 설명하기에 부족한 것으로 생각한다. 안중근은 세계적인 안광(眼光)을 갖고 스스로 ‘평화의 대표’를 자임한 것이다(據安重根歷史而論之 亦曰舍身仇 國之志士而己 爲韓報仇之烈俠而己 余以爲未足以盡重根也 重根具世界之眼光 而自任平和之代表也)” 39) 36)《東洋平和論》〈前鑑〉. 37) 앞의 만주일일신문사의《안중근사건 공판속기록》, 175~183쪽. 38)《東洋平和論》〈序〉. 39) 국가보훈처의《안중근전기전집(安重根傳記全集)》, 1999, 22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