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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11 라고 하여 동지간의 단결과 이주 한인의 민족의식 고취를 최대 급무로 역설하고 있는데, 이는 곧 의병을 조직하고 항일전을 수행하는 전제조건으로 요구되는 내 용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철환을 피치 말고 붉은 피로 독립기를 크게 쓰 고 동심동력하여” 무장항일전에 진력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곧 동의회는 의병결 사 그 자체는 아니었으나, 그 중심인물들이나 추구하던 노선이 항일의병을 지향 하고 있었다. 6) 하지만, 동의회는 결성된 지 오래지 않아 이범윤과 최재형 양 세력간의 갈등으로 인해 이범윤 계열이 이탈된 채 최재형과 이위종 계열을 중심 으로 운영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동의회가 결성되던 초기에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대거 회집하여 의병을 추진하였으므로 이범윤도 이와 같은 추세에 능동 적으로 동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범윤이 최재형과 갈등을 노정하는 상황에서 동의회는 그 성격상 이범윤 세력이 자연히 배제되고 최재형 중심으로 운영되어 간 듯하다. 이듬해인 1909년에는 최재형이 직접 동의회의 회장직을 맡아 활동을 주도하였고, 안중근과 엄인섭 등의 평의원이 실제 회무를 관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백규삼․이경화(李京化)․김기룡․강창두(姜昌斗)․최천오 (崔天五) 등의 의병 간부들을 비롯해 정순만(鄭淳萬)․전명운(田明雲)․이홍기 (李鴻基) 등 총 20~30명이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회원 총수는 2~3천 명에 달하였을 만큼 방대한 규모였다. 7) 위에서 보았듯이 안중근은 발기인의 일원으로서 동의회의 결성과정에 참가한 뒤 평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중심역할을 수행한 간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와 결의형제를 맺었던 엄인섭이 부회장으로, 그리고 김기룡이 평의원으로 동의회의 활동에 적극 가담하였던 사실도 안중근과 동의회의 관계를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안중근은 또 동의회 의병부대의 우영장(右營將)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안중근이 포함된 동의회 의병의 편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8) 도영장(都營將) 전제익(全濟益) 참모장(參謀長) 오내범(吳乃凡) 참모(參謀) 장봉한(張鳳漢) 지운경(池云京) 6) 박민영, 대한제국기 의병연구 , 293~294쪽. 7) 박민영, 대한제국기 의병연구 , 295쪽;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7 , 218․ 256~257쪽. 8) 「官秘 제8호(1915년 5월 24일 접수)」‘排日鮮人 退露處分에 關한 件’(1915년 5월 17일 조선총 독 寺內正毅가 외무대신 加藤高明에 보낸 문서),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의 部 在西比利亞 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