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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하얼빈의거와 순국 100주년의 성찰 84 군사연구 제129집 아침 9시 무렵 미리 삼엄한 경계망을 편 하얼빈 역두에 한국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인 이토를 태운 특별열차가 멈춰 섰다. 대기 중이던 러시아 대 장대신 코코프체프가 수행원을 거느리고 기내에 들어가 그를 영접하였다. 약 20분 뒤 이토가 수행원을 거느리고 코코프체프의 안내를 받으며 열차에서 내려 군악을 울리며 도열한 의장대를 사열하고 이어 각국 사절단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받기 시작하였다. 이때 안 의사는 러시아 의장대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안 의사는 이토가 10여 보 떨어진 지점에 이르렀을 찰나 전광석화같이 브로닝권총을 꺼내들고 그를 향해 발사하였다. 제국주의 침략에 도전하는 정의의 탄환, ‘의탄(義彈)’이었다. 14) 제1탄이 이토의 가슴을 명중시키고, 제2탄도 그의 흉부를 맞췄다. 또 제3탄도 그의 복부를 관통하자 이토는 그 자리에서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래도 안 의사는 만약 쓰러진 자가 이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뒤따르던 일본인들을 향해 세 발을 더 쏘았다. 이토를 수행하던 하얼빈 일본총영사 가와가미 도시히코(川上 俊彦)와 궁내부 비서관 모리 야스지로(森泰二郞), 만철(滿鐵)이사 다나가 세이지 로(田中淸太郞)가 중경상을 입고 차례로 쓰러졌다. 절묘하게도 이토 일행과 뒤섞 여 수행하던 코코프체프 일행의 인사는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후일 안 의사는 의거시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이등이 환영인 속을 인사하면서 통과하는바 나는 신문 삽화에서 보았을 뿐이 므로 과연 이등에 틀림없느냐 아니냐고 주저하였으나, 러시아 대신 같은 자와 인 사하는 폼을 보고 드디어 이등에 틀림없다고 인정하고 발사하려 하였으나 러시 아대신과 겹쳐 있는 까닭으로 발사할 수가 없어 잠시 신체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 렸더니 약 1척 가량 러시아인과의 거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그를 향해 발사 하였다.” 15) 안 의사는 순식간에 침략자의 응징장으로 변한 현장에서 이토가 쓰러진 것을 확인하고 ‘코리아 후라’(대한국 만세)를 3창하고 태연자약하게 러시아 헌병장교 미치올클로프에 의해 포박되었다. 이때를 안 의사는 9시 30분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14) 안 의사는 옥중에서 쓴《東洋平和論》〈序〉말미에서 이 의거를 “東洋平和義戰”이라고 표현하였다. 15) 국사편찬위원회,《韓國獨立運動史 자료》7, 424~425쪽(1909. 12. 3. 境경시의 제6회 신문에 대한 공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