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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군인관의 형성과 전개 64 군사연구 제129집 무엇보다 한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안중근의 상무정신을 주목하였다는 데서 군인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설정할 수 있다. 즉, 이순신을 중국의 은인으로 여긴 중국사람 나남산(羅南 山)은 안중근의거로 “한국인의 기개가 죽지 않게 되었으며 우리 중국인도 이상할 정도로 감격하였다”하면서 을사늑약을 듣고서 인천 앞바다 에 빠져 죽은 중국인 반종례(潘宗禮)를 거명하며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존망 위기를 만나면 서로 피로써 보답한다고 하여 안중근이 중국을 살렸다는 의미로 평가하였다. 68) 더 나아가 중국인 주호(周浩)는 안중근의거는 진실로 조국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의 공적을 베어버린 것이고 한국의 공신(功臣)만이 아니라, 동양 과 세계의 공신이라고 안중근의거를 평가하였다. 69) 또한 고관오(高冠吾)는 안중 근을 이탈리아의 군인이자 국민영웅인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7〜1882) 에 버금가는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특히, 반상루(潘湘纍)는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후 한인들은 안씨를 계승하여 일어나 더욱 용맹하였다. 의에 죽은 자가 실로 허다하였다. 온갖 고통을 견디며 나라를 찾으려는 자들은 지금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안 중근이 있어 그 기풍을 만든 것이다” 70)라고 하여 이후의 독립전쟁의 근원적 에너 지를 안중근이 제공하였다고 평하였다. 이처럼 국내에서 망국의 원인인 문약을 극복한 군인의 표상으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국외에서는 중국을 국망에서 구한 이순신과 세계적 전쟁영웅인 가리발리 등 세계적인 군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중근을 한국의 독립전쟁(한국근대군대)의 ‘시조’라는 역사적 위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 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71) 68) 박은식,『안중근』, 268~269쪽. 69) 위의 책, 268쪽. 70) 위위 책, 275쪽. 71) 심지어 그를 ‘의사’로 받든 일본인이 있었다는 데서 그의 국제적 위상을 알 수 있다(신운용, 「의거에 대한 국외의 한인사회의 인식과 반응」,『안중근과 한국근대사』, 39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