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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군인관의 형성과 전개 58 군사연구 제129집 「긔서」에 발표하였다. 54) 그 주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안중근은 “자기가 자기를 단합하는 것”, “자기 집을 단합하는 것”, “자기 국가 를 단합하는 것”으로 단합의 의미를 분류하였다. 그는 단합을 몸과 마음의 연합, 부모처자의 화합, 국민 상하의 상합이라고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해조신문 「긔서」는 이 시기 안중근의 현실인식과 의병(군인)관을 엿볼 수 있 는 중요한 사료로 몇 가지 점에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안중근의 현실인식 이다. 즉, 그는 당시 한국이 일제의 침략을 당하는 이유를 개인ㆍ가족ㆍ국가의 54) 안중근의 인심단합론은 그의 사상 더 나아가 군인관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중 요한 사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게재한다. 귀보의 논설에서 인심이 단합하여야 국권을 흥복하겠다는 구절을 읽으매 격절한 사연 과 고상한 의미를 깊이 감복하여 천견박식으로 한 장 글을 부치나이다. 대저 사람이 천지만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삼강오륜을 아는 까닭이라. 그런고로 사람이 세상에 처함에 제일 먼저 행할 것은 자기가 자기를 단합하는 것이오, 둘째는 자기 집을 단합하는 것이오, 셋째는 자기 국가를 단합하는 것이니 그러한 즉 사 람마다 마음과 육신이 연합하여야 능히 생활할 것이오. 집으로 말하면 부모처자가 화합 하여야 능히 유지할 것이오. 국가는 국민상하가 상합하여야 마땅히 보전할지라. 슬프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 참혹한 지경에 이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不合病이 깊이 든 연고로다. 불합병의 근원은 驕傲病이니 교만은 만악의 뿌리라. 설혹 도적놈이 몇이 합 심하여야 타인의 재산을 탈취하고 잡기군도 동류가 있어야 남의 돈을 빼앗나니 소위 교 만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자기보다 나은 자를 시기하고 약한 자를 능모하고 같이 하면 다투나니 어찌 합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교오병에 약은 겸손이니 만일 개개인이 다 겸 손을 주장하여 항상 자기를 낮추고 타인을 존경하며 책망함을 참고 잘못한 이를 용서하 고 자기의 공을 타인에게 돌리면 금수가 아니거늘 어찌 서로 감화하지 않으리오. 옛날에 어떤 국왕이 죽을 때에 그 자손을 불러 모아 회초리나무 한 뭇(묶음)을 헤쳐주 며 각각 한 개씩 꺾게 함에 모두 잘 부러지는지라 다시 분부하여 합하여 묶어놓고 꺾으 라 함에 아무도 능히 꺾지 못하는지라. 왕이 가로대, “저것을 보라. 너희가 만일 나 죽음 후에 형제간 散心되면 남에게 용이하게 꺾일 것이오 합심하면 어찌 꺾일 것이오”라고 하 였다 하니 어찌 우리 동포는 이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리오. 오늘날 우리 동포가 불합한 탓으로 삼천리강산을 왜놈에게 빼앗기고 이 지경 되었도 다. 오히려 무엇이 부족하여 어떤 동포는 무슨 심정으로 내정을 정탐하여 왜적에게 주며 충의한 동포의 머리를 베어 왜적에 받치는가. 통재 통재라 분함이 徹天하여 공중에 솟아 고국산천 바라보니 애매한 동포가 죽는 것 과 무죄한 조선의 백골을 파는 소리를 참아 듣고 볼 수 없네. 여보 강동 계신 우리 동포 잠을 깨고 정신 차려 본국 소식 들어보오. 당신의 일가가 친척일가가 대한 땅에 다 계시 고 당신의 조상 백골 본국강산에 아니 있소. 나무뿌리 끊어지면 가지를 잃게 되며 조상 친척 욕을 보니 이내몸이 영화될가 비나이다. 여보시오 우리 동포 지금 이후 시작하여 불합 이자 파괴하고 단합 두 자 急成하여 幼 稚子姪 교육하고 노인들은 뒷배보며 청년형제 결사하여 우리 국권 어서 빨리 회복하고 태극기를 높이 단 후에 처자권속 거느리고 독립관에 재회하여 대한제국 만만세를 육대부 주 혼동하게 일심단체 불러보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