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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51 1만 3천 루불을 기반으로 의병의 군자금이 마련되었다. 30) 안중근도 여러 지역을 돌며 모금한 약 4천 루불의 군자금을 쾌척하였다. 31) 이 돈으로 100정의 총을 마 련하여 의병들을 무장시켰다. 군자금의 확보는 의병조직의 편성으로 이어졌다. 안중근은 총독 김두성(金斗星), 32) 대장 이범윤을 중심으로 하는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고『안응칠역사』에 기록하 고 있다. 그런데 이범윤을 능가하는 인물로 김두성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는 김두성이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김두성이 실존인물인가 하는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최재형일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자금과 무기의 조달 능력, 한인의 지지와 존경도, 의병세력의 장악력 이라는 점 등에서 이범윤을 능가할 사람은 최재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병세력 은 이범윤파의 창의회와 최재형파의 동의회로 양분되어 있었다. 동의회 창립발 기인인 안중근은 최재형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최재형과 애증관계에 있 던 33) 안중근은 독자적인 세력형성에도 힘을 기울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최재형의 30) 日本 外交史料館, 「排日鮮人退露處分ニ關スル件」, 在西比利亞 第5卷. 31) 국사편찬위원회, 「헌기 제2624호」,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7, 235쪽. 32) 김두성이라는 인물의 실존성에 대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즉, 조동걸은 김두성을 유인석으로 보았다(조동걸, 「安重根義士 재판기록상의 인물 金斗星考」, 韓國近 現代史의 理想과 形象 , 푸른역사, 2001, 123쪽). 반면, 신용하(신용하, 「안중근의 사상과 의병운동」, 163쪽)와 오영섭(「간도지역 독립운동과 안중근이 지도한 의병전선」,『동북 아 평화와 안중근 의거 재조명』(안중근 의거 99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안중근하얼빈 학회․동북아역사재단, 1998, 30쪽.)은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두성은 최재형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동의회는 최재형과 이범윤의 양대파의 합작으로 성립 되었는데, 이범윤에 필적할 사람은 당시 최재형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의 사료도 안중근을 최재형의 부하로 파악하였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7, 263쪽). 아울러 최재형의 의병조직은 우영장에 안중근이, 좌영장에 엄인섭이 각각 임명되고, 이들의 상관인 都營將을 전제익이 맡았다. 형식적으로 전제익이 중심이 된 의병대였으나, 실질적인 최고 상관은 최재형이었다. 문제는 안중근이 최재형을 김두성이라고 기술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 반병률은 안중근이 최재형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기술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반병률, 「안중근(安重根)과 최재형(崔在亨)」, 역사문화연구 33,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09, 참조). 하지만 이범윤 등의 인물에 대해서는 그대로 진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럴 가능성은 없다. 안응칠역사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최재형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도 앞으로 해결해 야 할 문제이다. 33) 안중근은 1909년 10월 무렵까지 최재형에 의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범윤을 친로파로 평가한 것처럼 최재형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신운용,「안중근의 의병투쟁과 활동」,『안중근과 한국근대사』, 14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