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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43 으로 활동하다가 박영효의 몰락으로 낙향하여 출세를 단념하고 청계동으로 들어 온 일련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태훈이 안중 근에게 학문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던 점이 이해된다. 1895년 2만에 달하는 동학군이 청계동으로 몰려 왔다. 70여 명으로 2만의 동학 군을 물리쳤다는 안중근의 기록은 좀 과정된 점도 있지만 병세(兵勢)로 볼 때 청 계동은 동학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안중근 가문과 동학 의 충돌은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안중근의 상무정신이 잘 발휘되었 다는 측면에서 주목되는 사건이었다. 동학군의 기세에 눌려 있던 청계동의 사람 들에게 안중근은 “만일 지금 적진을 습격하기만 하면 반드시 큰 공을 세울 것이 다”이라고 독려하였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 황에서 안중근은 그렇지 않다. 병법(兵法)에 이르기를『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 긴다』고 했다. 내가 적의 형세를 보니 함부로 모아 놓은 질서 없는 군중이다. 우리 일곱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기만 하면 저런 난당(亂黨)은 비록 백만 대 중이라고 해도 겁날 것이 없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으니 뜻밖에 쳐들어가면 파죽 지세(破竹之勢)가 될 것이다. 그대들은 망설이지 말고 내 방략대로 좇으라. 8) 라는 전략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대목은 안중근이 병법을 언급하고 있 다는 사실이다. 이는 안중근이 평소 병법에 대한 관심을 갖고서 연구를 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병법서『소서』를 즐겨 암송한 안태훈의 상무적 기질이 안중근 에게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안중근이기에 “친구와 의(義)를 맺는 것(親友結義),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飮酒歌舞)”, “총으로 사냥하는 것(銃砲狩獵), 날랜 말을 타고 달리는 것 (騎馳駿馬)” 9)라고 하는 네 가지를 평생 즐겼던 것이다. 이와 같은 특성은 “그래서 멀고 가까운 것을 가리지 않고 만일 의협심 있는, 사 나이다운 사람이 어디서 산다는 말만 들으면, 언제나 총을 지니고 말을 달려 찾아 갔었고, 과연 그가 동지가 될 만하면 감개한 이야기로 토론하고 유쾌하게 실컷 술 을 마시고서 취한 뒤에는 혹 노래도 하고 혹 춤도 추고”라고 한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잘 갖추어진 호연지기(浩然之氣) 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 위의 책, 79〜80쪽. 9) 위의 책, 8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