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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41 계몽이란 도덕성의 회복이었다. 일본은 도덕성을 잃고 이웃나라에 대한 침략을 일삼는 타락한 국가였다. 따라서 일본이 도덕성을 회복하는 길만이 한국의 독립 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며 세계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첩경으로 보았다. 의거 도 이러한 면에서 일제를 계몽의 대상으로 여긴 결과였던 것이다. 안중근은 그 때 그 때마다 느낀 점을 시에 담았다. 그의 시는 단순한 감정의 유희에 집중되지 않았다. 천명의 실천의지를 표현한 것이며 독립투쟁의 극한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관념을 넘어 현실의 개조와 창조에 몰두하는 자세를 느낄 수 있다. 시와 더불어 국가안위노심초사(國 家安危勞心焦思),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 義見危授命) 등의 유언과 같은 유묵도 그의 총체적인 사상성과 군인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이토 처단의 명분으로 자신이 군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많은 면 중에서 그가 의병(군인)이었다는 측면을 결코 경시할 수 없 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안중근을 군인으로서 주목하는 논저는 거의 보이 지 않는다. 이에 필자는 본고에서 그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안중근의 군인관 형성과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군인으로서의 안중근에 착목하고자 한다. Ⅱ. 상무정신의 형성과 발현 1. 가문의 전통과 무인기질 형성 안중근의거는 그의 가문 성향과도 일정하게 연관되어 있다. 2) 순흥안씨(順興安氏) 참판공파(參判公派)에 속하는 그의 집안이 무반가문으로 본격으로 등장한 것은 5대조 안기옥(安起玉)대부터이다. 안기옥 아들들 즉 안중근의 4대조인 안영풍 (安永豊)ㆍ안지풍(安知豊)ㆍ안유풍(安有豊)ㆍ안순풍(安順豊)은 모두 무과에 급제 하였다. 안지풍의 맏아들이자 안중근의 증조부인 안정록(安定祿)과 안유풍의 아들 안두곽(安斗亨), 손자 안인환(安仁煥), 그리고 안순풍의 아들 안신형(安信亨) 등이 무과에 급제하였다. 뿐만 아니라 안유풍의 손자 안인권(安仁權)이 절충장군이라는 2) 안중근가문의 자세한 내력은 오영섭,「개화기 안태훈의 생와 활동」,『한국근현대사를 수놓 은 인물들(1)』, 경인문화사, 2007, 221〜226쪽,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