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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33 더욱 심하여 참으로 기록하기 어렵다. 이른바 이등박문은 천하대세를 깊이 헤아려 알지 못하고, 함부로 잔혹한 정책을 써서 동양 전체가 장차 멸망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멀리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장만 끼고 아무런 방 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을까 보냐. 그러므로 나는 생각다 못하 여 하얼빈에서 총 한 방으로 만인이 보는 앞에서 늙은 도적 이등의 죄악을 성토하 여 뜻있는 동양 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68) 위에서 보건대, 안중근이 하얼빈의거를 결행한 궁극적 의도와 목적은 한민족의 특수한 입장과 처지를 넘어서는 인류 보편의 고귀한 가치인 평화와 자유를 구현 하여 이를 수호하는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중근은 대한침략의 원 흉 이등박문이 당시 동양에서 이러한 인류의 절대 가치를 파괴하는 최대의 공적 (公敵)으로 지목하여 그를 처단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이 안중근의 독 립운동 이념과 그가 결행한 하얼빈의거 양자가 모두 갖고 있는 고귀한 의의라 평 하지 않을 수 없다. Ⅴ. 맺 음 말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07년 10월 연해주에 망명한 안중근은 동의회(同義會)와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등 두 단체에 참여해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동의회는 연해주의병의 중심 단체 였고, 안중근이 주도한 동의단지회는 동의회의 후신으로 설립목적과 참여인물이 더욱 한정되고 구체화된 단체였다. 1908년 봄에 결성된 동의회는 이주 한인간의 결속도모와 환난구제를 표방하였 으나, 실질적으로는 항일의병을 추진하기 위한 결사의 성격이 강하였다. 안중근은 최재형(崔在亨)․이범윤(李範允)․엄인섭(嚴仁燮)․김기룡(金起龍)․이위종(李瑋 鍾)․전제익(全濟益) 등과 함께 동의회의 발기인으로 회의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 여한 뒤 평의원(評議員)으로 활동하였다. 또 그와 결의형제를 맺었던 엄인섭은 부 회장으로, 그리고 김기룡이 평의원으로 동의회의 활동에 적극 가담하였던 사실도 안중근과 동의회의 관계를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안중근은 최재형 세력을 68) 안중근의사숭모회 편, 안중근의사 자서전 , 577~57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