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page

안중근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연구 32 군사연구 제129집 독립전쟁의 한 과정, 혹은 결과였음을 당당히 천명한 것이다. 그 결과 안중근은 또 의병인 자신을 폭도로 지칭하는 일제의 왜곡된 시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명쾌한 논리로 반박할 수 있었다. 나를 지칭하여 폭도라고 한다. 이미 일인의 흉량(胸量)이 작음을 보이고 남을 모 함하는 것이다. 나는 의병이며 폭도가 아닌 것이다. 만약 폭도의 이름을 구하지 않 을 수 없다면 일본병이야말로 폭도다. 그리고 이등은 그 거괴(巨魁)다. 왜냐하면 이 등이 이끄는 일병은 남의 나라를 빼앗은 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폭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국난을 구하려고 거병하였다. 자국(自國) 위난(危難)에 나가는 자 이 것이 의병이 아니겠는가. 66) 안중근 자신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구국을 위해 거의(擧義)하였으므로 폭도가 아 닌 의병이며, 진실로 폭도를 지목하자면 곧 남의 나라를 침략한 일본군이고, 이등박 문(伊藤博文)이야말로 그 폭도의 수괴라는 논리를 명확히 설파한 것이다. 이러한 논 리는 민족 자존, 주체의식에 근저를 둔 의병정신의 자연한 발로였다고 하겠다. 67) 이상에서 보았듯이 안중근은 의병으로서 독립전쟁인 의병전쟁을 결행한 결과 일제 침략세력을 형상화한 이등박문을 처단하는 커다란 전과를 올렸다. 안중근은 하얼빈의거 직후인 1909년 11월 6일 「이등박문죄악(伊藤博文罪惡)」 15개 조와 함께 일제 관헌에게 제출한 「한국인안응칠소회(韓國人安應七所懷)」라 는 글에서 하얼빈의거를 결행한 이유를 밝히면서 대외침략과 문명파괴를 근간으 로 삼는 제국주의의 반문명적 속성을 폭로하고자 거사한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천명하였다. 하늘이 사람을 내어 세상이 모두 형제가 되었다. 각각 자유를 지켜 삶을 좋아하 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가진 떳떳한 정(情)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으 레 문명한 시대라 일컫지마는, 나는 홀로 그렇지 않은 것을 탄식한다. 무릇 문명이 란 것은 동서양 잘난이 못난이 남녀노소를 물을 것 없이, 각각 천부( 天賦 )의 성품을 지키고 도덕을 숭상하여,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이 제 땅에서 편안히 생업을 즐기 면서, 같이 태평을 누리는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시대는 그렇지 못하여 이른바 상등사회의 고등인물들은 의논한다는 것이 경쟁하는 것이요, 연구한다는 것이 사람 죽이는 기계다. 그래서 동서양 육대주에 대포연기와 탄환 빗발이 끊일 날이 없으니, 어찌 개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동양대세를 말하면 비참한 현상이 66)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7 , 404쪽. 67) 박민영, 대한제국기 의병연구 , 307-30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