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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연구 30 군사연구 제129집 5. 결성 취지 안중근은 1908년 7~8월 2백 명 규모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국내진공작전을 결 행한 뒤에 동의단지회를 결성하였다. 전술하였듯이 그는 국내진공작전에서 천신 만고 끝에 생환한 뒤 연해주 한인사회 각지를 순방하면서 동포간의 단결과 화합 을 강조하였다. 안중근은 연해주 각지 한인사회 순방을 마치고 연추로 돌아와 그동안 자신이 역설한 단결과 화합의 증좌(證左)로 제시하기 위해, 나아가 한국독립을 이룩하는 데 헌신한다는 빙거(憑據)로 보이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단지하였다. 곧 동의단지 회는 의열투쟁을 결행할 목적하에서 결성된 단체가 아니라, 조국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굳은 결심을 나타내기 위해 결성한 단체였다고 할 수 있다. 후일 안중근이 신문을 받으면서 단지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단지의 목적은 대한국의 독립을 꾀하기 위해서이며, 독립할 때까지는 여하한 방 법, 수단도 가리지 않고 감행할 생각에서이며 (중략) 단지할 당시는 민심이 산란하 고 또 나를 믿는 자가 없었으므로 나는 국가를 위하여 진력하는 열심을 타인에게 보이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단지한 것이다. 고로 이등을 죽이는 것만의 목적이 아니다. 62) 위의 진술 요체는 독립운동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단지하였으며, 나아가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신뢰를 얻기 위한 빙거로 단지 를 결행하였다는 것이다. 또 계봉우가 지은 「만고의사 안중근전」에는 다음과 같은 동의단지회 취지서가 소개되어 있다. 다소 장문이지만 그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우리 한국 인종이 국가가 위급하고 생민(生民)이 멸망할 지경에 당하여 어찌 하였으면 좋은 방법을 모르고 혹 왈 좋은 때가 되면 일이 없다 하고, 혹 왈 외국이 도와주면 된다 하나 이 말은 다 쓸 데 없는 말이니 이러한 사람은 다만 놀기 를 좋아하고 남에게 의뢰하기만 즐겨하는 까닭이라. 우리 2천만 동포가 일심단체 ( 一心團體 )하여 생사를 불고한 연후에야 국권을 회복하고 생명을 보전할지라. 그러나 우리 동포는 다만 말로만 애국이니 일심단체이니 하고 실지로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단체가 없으므로 특별히 한 회를 조직하니, 그 이름은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라. 62)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7 , 40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