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page

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29 생존해 있던 회원들에 대해 “자기 외에 오소리 방면의 하바로프에 강순규(姜順 奎), 흑하(黑河)에 김기룡(金基龍)․강창두(姜昌斗)․갈화천(葛化千)의 5명뿐으로 이 5인은 자기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모두 시베리아지방에서 학교를 경영하고 있 다.”라고 하여 조응순․강순기․김기룡․강창두․갈화천 등 5명을 거명하고 있 다. 59) 또 회원의 한 사람으로 명확히 드러나는 강순기에 관한 기록도 확인된다. 중앙 아시아 강제이주 후인 1959년에 강호여가 이인섭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가운데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는 대목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의 종조부 강순기(나의 조부의 둘째 동생)와 같이 결의형제이고, 쏘련으로 들어올 때에 ‘씰리와’(밀산 ‘십리와’를 지칭-필자주)에서 우리 군대와 홍장군(홍범도-필자주)의 군대와 합하여서 ‘대한독립군’의 명의 자유시까지 같이 들어왔고, 그 후에도 서로 만나면 조손(祖孫-필자주)의 칭호를 부르고 지냈습니다. 나의 종조부는 일본 이등박문을 할빈에서 죽이자고 12명이 단지동맹한 사람이며, 솔밭관 공산당군대에서 행정부장이었다. 60) 즉, 뒷날 홍범도와 결의형제를 맺었던 강순기는 안중근이 결성한 동의단지회에 가담하여 함께 단지한 맹원이었으며, 뒷날 연해주 솔밭관 한족공산당 빨치산부대 의 행정부장을 지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논급한 내용을 정리하면, 동의단지회 12명 회원 가운데 실명으로 확 인되는 인물로는 맹주 안중근을 비롯하여 백규삼(白圭三)․김기룡(金起龍)․강순 기(姜舜璣)․조응순(趙應順)․황병길(黃炳吉)․강창두(姜昌斗)․갈화천(葛化天) 등 8명이며, 나머지 정원주(鄭元柱[周])․박봉석(朴鳳錫)․유치홍(柳致弘)․김백춘(金 伯[海]春) 등 4명은 현재로서는 실명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1) 59) 윤병석, 「안중근의 ‘同義斷指會’의 補遺」, 100쪽. 60) 「리인섭 동지에게!(1959년 추정)」(독립기념관 소장 이인섭 관련 기증자료) 61) 러시아 한인사회 역사를 정리한 최호림은 동의단지회의 12명 회원으로 안중근․황병길․ 백규삼․조응순․김기룡․유치홍․강승규․정주원․강창도․김을령․박석봉․갈화천 등 을 거명했다고 하는데(반병률, 「안중근과 최재형」, 역사문화연구 33, 한국외국어대 역사 문화연구소, 2009, 89쪽), 실명과 관련되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이름 두 자의 앞뒤 순 서가 뒤바뀐 규칙에 비추어 본다면, 실명 확인이 어려운 4명 가운데 정원주는 정주원, 박 봉석은 박석봉으로 각각 합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호림은 나머지 유 치홍과 김백춘 2명에 대해서는 유치홍은 그대로 실명으로 보았고, 김백춘의 경우는 김을 령을 실명으로 파악한 것 같다. 그런데, 위의 본문의 실명 8명 외에 최호림이 실명으로 파악한 정주원․박석봉․유치홍․김을령 등 4명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며, 행적이 잘 드러 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