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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참전수기 272 군사연구 제129집 절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집결하고 보니 낙오자는 없었다. 대대와는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서 우리 중대는 완전히 고립되어 단독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오두막집 한 채가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더니 두건을 쓴 노인이 방에서 바깥을 보고 있었다.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하였더니 방안 구석에서 소쿠리에 담아 놓은 좁쌀 밥을 한 사발에 된장을 밥 위에 올려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중대에서 소지한 지도를 보고 동쪽 강릉을 향하여 후퇴를 재촉하여 강릉에서 대관령과 임계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했을 때 날도 저물고, 허기도 지고, 발도 부르트고, 지쳐서 이동이 제한되었다. 밤나무 숲에서 밤을 세우기로 하였는데 숲 변두리에는 몇 가옥이 있어서 들렸더니 피난가고 한 가정이 피난 자지 않은 채 부엌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밥을 먹어 보라면서 들어오라 하여 배가 고파 염치도 없이 들어 가 앉아 쌀을 조금 섞은 감자밥에 명태머리와 명태껍질, 산나물, 된장찌개를 맛있 게 얻어먹은 것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주머니는 왜 피난을 안 갔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국군을 따라가고 어린 자식 다섯을 데리고 어떻게 피난을 가겠 느냐며 가다가 고생하고 죽으나 안가고 편히 죽으나 매 일반이라면서 삶과 죽음 을 운명에 맡기겠다고 하였다. 여전히 대대와의 연락은 되지 않는다. 아마도 무전 주파수가 변경 되었나 보다. 우리 중대는 적 후방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밤나무 숲에 경계병만 세우고 산 천이 불빛 한 점 없이 달빛만 밝았다. 아침에 먹을 것도 없고 낙오된 군 집단은 허 무하고 비참하였다. 대열을 재정비하고 정처 없는 행군으로 남으로 내려오다가 파출소가 있는 마을에 들렸더니 파출소도 비었고 마을 사람들도 피난 다 가고 중 풍을 앓고 있는 노부부만 있고 온 마을이 비었다. 여기서 약간의 휴식하기로 하고 경계병만 세우고 배낭을 내리고 맑은 물이 흐 르는 개울에 발도 씻고, 세수도 하고, 배가 고파서 온 마을을 뒤졌으나 먹을 것이 라고는 독에 옥수수와 강낭콩 찌꺼기만 조금 남은 있어 가마솥에 볶았으나 차돌 같이 딱딱하여 먹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