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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동맹의 안보딜레마’와 한ㆍ미 동맹 250 군사연구 제129집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었던 코린토스 등 동맹국들을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약소국과의 동맹관계로 인해 원하지 않은 전쟁에 참 여하게 되는 사례는 많다. 그 중에 가장 익숙한 사례로 한국전쟁 시의 중국군의 참전을 들 수 있다. 유엔군의 반격으로 압록강까지 후퇴한 김일성은 중국의 모택 동을 찾아가 중국이 지금 참전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중요한 동맹국을 잃게 될 뿐 만 아니라 중국 본토까지 공격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군사적 지원을 강력하게 요 청하였다. 이러한 요청에 아키다무스처럼 신중론자였던 모택동은 며칠을 고민하 고 주요 간부들과 여러 번의 회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중국은 정부 수립 후 채 1년이 되지 않았었고 대만이 병합되지 않아 완전한 통일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미국과의 결전을 하기에는 군사력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 지만, 이들의 참전 결정은 스파르타의 결정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비록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 국가에 이익이 되지는 않지만, 북한이라는 동맹국을 잃게 되면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세력이 확대되어 종국적으로 중국에 큰 압력으로 작용 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코린토스 등 동맹국이 아테네에 패하여 아테네의 세력이 확장되면 결국 아테네․스파르타 두 강대국 힘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는 판단과 비슷한 개념적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판단 하에 중국은 동맹국 지도자인 김일성의 전략에 유도되어 원치 않는 전쟁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고 이는 스파르타가 전쟁에 참전하게 되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스파르타는 펠라폰네소스 동맹의 약소국인 코린토스의 전쟁에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되었고 결국 전쟁의 주도국이 되었다. 이는 코린토스가 냉혹한 국 제 체제에서 강대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신의 편인 강대국을 연루시켰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파르타의 전쟁 참전의 촉발요인은 코린토스라는 동맹 국가에 의한 동맹의 안보딜레마였던 것이다. 4. 스파르타의 메가라(Megara)21) 방기(abandonment) 동맹관계인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도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강대국은 약소국의 문제에 항상 적극적 관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곧, 무정부체제의 국제 21) 에게(Aegean)해 지역의 작은 섬에 있던 해양 도시 국가. 델로스 동맹에 속해 있었 으나, 전황이 스파르타에 유리해지자 동맹을 배신함. 후일 아테네에 의해 몰락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