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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동맹의 안보딜레마’와 한ㆍ미 동맹 248 군사연구 제129집 부연하여 한 가지 의문이 드는 사항은 코린토스인들이 아테네가 코르키라의 동맹 제안을 거절하고 반코르키라 정책으로 코린토스 편을 들어줄 것이라 확신했 고 또 그렇게 할 것을 대담하게 제한했던 점이다. 이는 한마디로 코린토스인들의 전략적 오인(misperception)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코 르키라와의 동맹은 결과적으로는 아테네 지도자들의 오인에 의한 비합리적 판단 이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오인의 사례는 많은 전쟁을 발생시 켰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은 영국이 중립으로 남을 것이라고 오판했고 독일 은 또한 프랑스와 러시아도 참전하지 않았으면 하고 희망했었다. 15) 2차 세계 대 전 당시에도 영국은 독일 경제가 과대 팽창 상태라고 판단하고 그 취약성을 과장 하였으며 또한, 히틀러의 전쟁의 의지를 오판했고, 히틀러도 적국의 의지를 과소 평가했다. 16) 요약하면 그리스 국제 체제의 세력 균형의 변화를 우려한 아테네는 불필요한 동맹관계 형성이라는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려 원하지 않는 전쟁을 강요당하 는 동맹의 안보딜레마를 겪게 되었던 것이다. 3. 코린토스(corinth)에 의한 스파르타의 연루(entrapment) 서론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논의하면서 아테네 세력에 대한 스파르 타의 두려움이라는 안보딜레마를 핵심적인 부분으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처음에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군사적 대립을 원하지 않았다. 스파르타인들은 펠로폰네소 스 동맹이 아테네 동맹과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판단했고 30년 평화 조약이 성실히 이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테네와의 전쟁은 전혀 국가에 이익이 되지 않 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스파르타의 평화 정책을 전환시킨 것이 바로 스파르타 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국 중 하나인 코린토스인들이었다. 그들은 코르키라와의 분 쟁에 아테네가 개입하자,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강대국인 스파르타에게 아테네에 의한 피해를 언급하면서 스파르타의 군사적 지원의 필요성과 아티카에 대한 침공 의 정당성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곧 약소국인 코린토스인들은 분쟁의 승리 15) Robert Jervis, “War and Misperception:The Origin and Prevention of Major Wars,”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Vol 18, No 4(Spring, 1988) pp.682~ 685. 16) Ibi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