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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연구 26 군사연구 제129집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인 11월 22일 정대호(鄭大鎬)가 안중근으로부터의 전 문(傳聞)에 따라 “안응칠 등 11명의 동맹은 한국의 독립을 기하기 위하여 손가락 을 자른 것으로서 생혈(生血)을 사발에 담아 이것으로써 기념의 국기에 대한독립 만세(大韓獨立萬歲)라고 대서(大書)하고 맹세한 것” 52) 이라고 하여 안중근이 동지 들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사실을 실토하였다. 하지만, 이때는 안중근을 포 함하여 11명만 회합에 참여한 것으로 진술하였다. 이후 안중근은 정대호가 동의단지회의 실체에 대해 실토한 이틀 뒤인 11월 24 일 구연(溝淵) 검찰관이 정대호와 대질 신문할 때 처음으로 구체적인 회원 명단 을 진술하였다. 이때 안의사는 11명이 함께 동맹을 맺었으나 자신만이 혼자 단지 한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응대하였다. 문: 국기에는 11인의 피로 썼는가? 답: 10인 앞에서 내가 혈서하였다. 문: 그대와 함께 11인인가? 답: 그렇다. (정대호에게) 문: 안은 지금 들은대로 10인 앞에서 안이 혈서한 것으로 11인이 손가락을 자른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여하한가? 답: 11인이 썼다고 들었다. (안응칠에게) 문: 정은 그렇게 말하는데 여하한가? 답: 10인이 내가 말하는 것을 믿지 않으므로 그 앞에서 내가 혈서한 것이다. 문: 그대 한 사람이면 동맹이 아니지 않은가? 답: 10인은 뜻을 같이 한 사람이다. 53) 즉, 안중근은 처음에는 자신을 포함한 11명이 함께 단지동맹을 결행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취지만 같이 하고 실제로 단지한 것은 자기 혼자뿐이었다고 주장 한 것이다. 회원들의 성명에 대해 안중근은 마지못해 “강기순(姜起順)․박봉석(朴 鳳錫)․정원주(鄭元周), 그밖의 사람은 이름을 모르는데 김(金)이라고 하는 사람 3, 4명이 있었고 그밖에 류(柳)․조(趙)․이(李)라고 하는 사람과 황길영(黃吉榮) 이라는 사람”이라고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54) 여기서 언급된 이들 가운데 강기순은 52) 국가보훈처 편, 亞洲第一義俠 安重根 1, 1995, 480쪽. 53)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6 , 180쪽. 54)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6 , 18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