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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9집 245 기원전 436년에 내전으로 쫓겨난 귀족당이 인근 야만족과 함께 에피담노스를 공격하자 포위당한 에피담노스의 민주파는 코르키라에게 원조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고립 정책으로 일관했던 코르키라는 원조를 거부했고 이에 에피담노스의 민주파는 코린토스(corinth) 9) 에 원조를 요청했으며 이들 코린토스인들은 대규모 부대를 파견했다. 이러자 코린토스와 좋지 않은 관계에 있었던 코르키라는 가만 히 있을 수 없었고 에피담노스에게 민주파가 코린토스가 파견하는 부대와 식민지 들을 떠나보내고 망명 귀족당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최후통첩을 하였다. 하 지만, 이런 통첩은 상대에 의해 받아들여질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코린토스는 그 러한 불명예스러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에피담노스의 민주파는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지원군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코르키라들은 코린토스가 부유한 나라이고 분노하고 있으며 스파르타의 동맹이자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일 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결국 코린토스가 에피담노스에 식민시 건설을 주장하고 스파르타 동맹에서 배와 자금을 제공받자 코르키라인들은 그제서야 코 린토스의 잠재력에 대한 과소평가를 인식하고 화해를 추구하지만, 협상은 결렬되 었고 코린토스인들은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다. <그림 2> 코시리아(Corcyra)와 코린토스(Corinth) 10) 9) 펠로폰네소스 동맹 국가로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략적 지역에 위치함 10)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열전」 (http://www.kalnaf.egloos.com/2343703. 검색일 : ’10. 4.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