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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의 북벌정책과 나선정벌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재검토 236 군사연구 제129집 즉, 함경도 지역에서는 강한 군사력을 유지한 채, 여러 가지 방어시설을 설치하 고 남방 지역과는 다른 총동원체제인 제승방략을 실시하여 수차례에 걸친 여진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었다. 한편 나선정벌은 효종 5년(1654)과 9년(1658)에 발발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조선은 1차때 100명, 2차때 200명의 포수를 파병하였고, 이들은 청나라 군대와 연 합군을 형성하여 러시아군을 격퇴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조선 이 파병한 병력은 이전의 파병 사례에 비해 소규모였고, 실제 러시아와 전투를 벌인 기간도 하루나 이틀 정도의 단기전에 불과하였다. 또한 전투 이후에도 러시 아의 세력은 다소 위축된 것에 불과할 뿐,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다. 즉 征伐이라 는 용어를 사용하기에는 전투의 규모나 기간, 전투 이후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다소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인해 나선정벌을 조그마한 사건으로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선정벌은 외교사적 관점으로 조선이 서양과 치른 최초의 전투였 고, 전쟁사적 관점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 그리고 민족사적 관점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패배감에 젖어 있던 조선에게 승리감을 안겨준 전투 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나선정벌의 승리로 조선은 영고탑과 후춘 지역에 거주하며 변방 주민들 을 약탈하던 세력을 물리쳐 국경지대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완화되었다. 그리고 청나라는 러시아 세력을 흑룡강 상류 지역인 알바진(Albzin) 일대에 고착시키며 흑룡강 하류 지역의 지배권을 확보하였으며, 러시아는 흑룡강 하류 일대에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어 중요한 수입원이었던 모피 자원을 획득하는데 많은 어려움 을 겪었다. 요컨대 나선정벌은 비록 소규모의 단기전으로 진행되었지만 전투를 통해 17세 기 중반 러시아와 청,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이러한 사실은 소규모, 단기전, 비자주적 파병으로만 기억되는 나선정벌의 역사적 성격을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원고접수일: 2010. 4. 19, 심사완료일: 2010. 6. 2, 게재확정일: 2010. 6.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