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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9집 233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55) 6월 2일 청의 전선이 의란에 도착하였다. 지휘부가 승선할 上船은 4척, 中船은 36척, 中小船은 12척으로 총 52척이었고 중소형 화포 50문을 장착하여 100명의 화포수가 운용하도록 하였다. 이튿날인 6월 3일부터 러시아군과 본격적인 전투를 위한 출동준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조선군 265명의 병력 중에서 200명의 포수들 은 25명 단위로 8개 부대에 배속되었고 다시 5명씩 분산하여 승선하였다. 청군도 포수 5명과 일반군사 25명이 함께 승선하였다. 56) 6월 5일 의란에서 출항한 연합군은 10일 저녁 무렵 흑룡강 중앙에서 러시아 함대 11척과 마주쳤다. 연합군이 먼저 대포를 쏘자 러시아군도 바로 대포로 대응 하였다. 연합군은 횡대대형으로 전개하여 러시아 함대에 근접하면서 각종 화약무 기와 화살로 집중 공격을 가하였고, 전세는 우세한 화력과 바람을 등지고 공격하 는 조․청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결국 러시아군은 몸을 숨기거나 일 부는 함대를 버리고 상륙하여 숲 속으로 도망가기도 하였다. 조선군은 도망가는 러시아군에게 조총으로 사격을 가하면서 추가성과를 올리려 하였지만 러시아군도 이에 응사하면서 상호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한편 조선군은 청군의 명령으로 서풍 을 이용하여 러시아 함대를 火攻으로 공격하여 불태우기도 하였다. 이날 조선군의 피해는 전사자 8명, 부상자 25명이었고 러시아군의 피해는 11척 의 함대 중 10척이 불에 타고 겨우 한 척만이 탈출하는데 성공하였으며 船內에서 타죽거나 혹은 강변에서 총에 맞아 죽은 시체가 즐비하였다. 57) 이후 6월 11일부 터 13일까지 큰 전투 없이 戰線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청군은 6월 16일 북경으로 전투결과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냈는데, 여기에는 각 국의 피해병력이 기록되어 있었다. 청군은 전사자 110명과 부상자 200여 명, 러시 아군은 사령관을 비롯하여 270여 명이 전사하였고, 부상자 혹은 도망자가 227명 이었다. 58) 전투 종료 이후 청은 러시아군과 계속 대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조선군에게 9월 55) 신유 저 박태근 역주,『국역 북정일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76쪽(5월 20일〜 21일). 56) 박태근, 위의 책, 84〜85쪽(6월 3일〜4일). 57) 박태근, 위의 책, 87〜91쪽(6월 10일). 58) 박태근, 위의 책, 16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