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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9집 231 1654년 흑룡강에서 패하여 후퇴한 러시아군은 이후 군사력을 정비하여 재차 흑룡강 부근으로 출몰하였고, 청나라는 독자적인 대응이 계속 실패로 돌아가자 청은 1658년 2월 조선에 2차 파병을 요청하였다. 청나라 사신 이일선이 勅書를 가지고 오니 ... 효종이 서교(西郊 : 서울 서대문 밖) 에서 기다리다가 친히 희정당(熙政堂 : 창덕궁 내 궁전)에서 접견하였다. 이일선이 “청나라가 장차 병력을 보내 나선을 정벌하려고 하는데 군량이 심히 부족합니다. 청컨대 조선이 5개월분의 곡식을 가져와 줄 것을 요구합니다.”라고 하자, 효종이 “적의 형세는 어느 정도나 되는가?”라고 물었다. 이일선이 “적의 병력은 천여 명에 불과하지만 제가 이렇게 빨리 달려온 것은 北路에 모아둔 식량이 없어서 內地의 곡식을 옮기고자 하기 위함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효종은 “먼 지역에서 옮기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어찌 아니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52) 청나라는 칙서와 더불어 예부에 보내는 공문서도 함께 전달하였는데, 내용은 조 선군이 작전기간에 필요한 5개월분의 식량과 군수품을 자체적으로 준비하라는 것 이었다. 또한 조선의 군사 파견 규모도 1차의 2배인 200명을 요구하였다. 이와 같 이 출병규모가 확대된 이유는 1차 나선정벌시 조선군의 활약이 전투의 승리에 결 정적인 기여를 한 점과 러시아 세력이 1차와는 달리 한층 강력해졌기 때문이었다. 효종은 칙서를 받은 직후 그 자리에서 파병을 약속했고, 다음날 비변사는 병력 파병과 관련하여 32개 항의 세부항목을 수립하였는데, 중요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① 영병장은 함경북도병마우후 신유로 결정한다. ② 포수 200명을 선발할 때 兵使와 영병장이 함께 입회하며 ... 전체 4,700명을 한결 같이 각 읍 포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대략 20명 가운데에서 1명을 선발 하고 이에 준하여 200명의 숫자를 뽑을 것이며, 갑오년(1차 나선정벌)에 이미 출정 경험이 있는 자는 뽑지 말되 만약 자원자가 있으면 뽑아 보낸다. ③ 갑오년에는 회령에서 영고탑에 이르기까지 양식을 준비하고 그 후에는 청 국에서 양식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오고가는 시간을 계산하여 먹을 양식 을 준비한다. 往來月日을 정확하게 알 수 없을 경우에는 갑오년에 군병이 오고 간 일수에 의거하여 마련한다면 3개월이 적당할 것이며 ... 군량은 영고탑에서 일체 수송한다. 52)『효종실록』권20, 9년 3월 경자.; 청의 2차 파병 요청시 효종은 직접 사신을 영접 하였는데 이는 사신이 청 황제의 칙서를 직접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