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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의 북벌정책과 나선정벌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재검토 230 군사연구 제129집 4월 28일 조ㆍ청 연합군과 러시아군이 전투를 시작하였다. 조선군은 후방에서 조총으로 청군을 지원사격 하였고, 러시아군은 조선군의 사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반격의 실마리를 찾던 중 때마침 동풍이 불어 러 시아군은 손쉽게 전장을 빠져나갔다. 이때 조․청 연합군은 후퇴하는 러시아군을 추격하여 추과성과를 올리려 하였지만 러시아군이 빠른 속도로 탈출하였기 때문 에 중도에 추격을 중지하고 귀환하였다. 그리고 4월 28일 전투를 제외하고는 특 별한 전투가 발생하지 않았다. 48) 조․청 연합군은 5월 6일부터 7일까지 이틀에 걸쳐 흑룡강의 작은 섬에 둘레 가 5리 정도 되는 소규모 土城을 축조하여 유사시 작전 거점으로 사용할 수 있도 록 작업을 완료하였다. 이후 조선군은 철수준비에 들어갔고, 5월 16일 흑룡강에서 철수하여 6월 13일 영고탑으로 돌아왔다. 49) 영병장 변급은 나선정벌의 승리를 조정에 보고하였고, 이 狀啓는 7월 2일 조정 에 도착하였다. 50) 이튿날 효종은 비변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변급과 출정 군사들 의 노고를 치하하고 등급에 따라 포상을 주었다. 또한 출정 군사들의 役을 면제 해주고, 변급에게는 벼슬을 승급시켜 주었다. 비변사가 효종에게 건의하였다. “변급이 군사를 거느리고 異域에 깊이 들어갔다 가 군사들을 온전히 데리고 돌아왔으니 상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병조로 하여금 논상하게 하소서. 또한 군인들은 거주지 고을로 하여금 호역( 戶役 )을 면제해 주고, 쌀과 베를 하사하는 한편 호궤( 犒饋 : 군사들에게 음식을 지급)를 실시하여 위로하 게 하소서.” 이에 효종은 비변사의 건의를 받아들였고 특명으로 변급에게는 재물 을 더해주었다. 51) 1654년 1차 나선정벌은 러시아 세력을 물리치는 결정적인 전투는 아니었다. 하 지만 조선군 100여 명에 달하는 포수병의 활약으로 러시아군을 퇴거시키고, 조․ 청 연합작전의 성공에 기여하는 등 조선의 입장에서는 출병임무를 완수하였다. 그리고 비록 평화적인 만남은 아니었으나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처음 만나는 한․러 관계의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48) 양태진,「350년 전(1654)의 나선정벌을 생각하다(상)」.『북한』403, 북한연구소, 2005, 204쪽. 49) 서인한, 위의 논문, 338〜343쪽. 50)『효종실록』권13, 5년 7월 기축. 51)『효종실록』권13, 5년 7월 경인. ..